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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전하는 과거는 아름다운 현재를 만든다

    영문학과 96, 윤희정 동문

    도전하는 과거는 아름다운 현재를 만든다

    “아나운서는 백조예요.” 윤희정 아나운서는 말한다. 신뢰감 있는 차분한 목소리, 깔끔한 외모, 뿜어져 나오는 우아함. 윤희정 아나운서를 처음 봤을 때의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그 우아함 속에는 치열하게 삶을 살아온 흔적들이 가득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96학번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윤희정입니다. 현재 23년차 아나운서예요. 저희 회사 직원들이 연차 말하지 말라고들 하는데. (웃음) 현재는 행사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는 하지만 방송국을 나와 소속이 없는 상태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아나운서라기보다는 방송인이죠. 또, (주)YA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Q. 아나운서의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떻게 보면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한 게 저를 아나운서의 길로 이끈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학교에 대한 애착이 없었어요. 그러던 와중, 학교에서 홍보대사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고, 학교에 대한 애착을 가져보자며 학교의 홍보대사인 ‘알리미’에 가입하게 되었어요. 알리미로 활동하던 도중, 학교 홍보 모델에 지원해 좋은 기회를 얻어서 방송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홍보 모델로서 버스 광고에도 붙고 여기저기에 얼굴이 보이니까 CF 감독에게 연락이 오더라구요. 그 때부터 광고, 드라마, 영화,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면서 여러 방송 출연을 경험했어요. 저는 처음부터 방송인이 되고 싶다는 꿈은 없었지만,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방송을 시작하면서 방송인이 참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3학년 때는 리포터를 하게 됐는데, 당시 친하던 선배가 졸업 후 아나운서가 되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해서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해서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고요. 제 성격이 엄청 적극적이고 일단 도전해보는 성격이에요. 바로 주변 친척 중에 아나운서로 활동 중이신 당숙아저씨께 연락드려 도움을 청했죠. 당숙아저씨께서 KBS로 오라고 하셔서 방송국 구경도 하고 회의하고 수다떠는 것도 보고 옆에서 일하시는 모습도 봤어요. 밥을 먹고 7시 뉴스를 하러 들어가시는데 저한테 스튜디오로 들어와서 옆자리에 앉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황정민, 김진수 앵커가 진행하는 7시 뉴스 현장 분위기를 느껴보라고. 당시에는 너무 떨렸었죠. 그때의 떨림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방송국을 나오고 나서 저는 바로 “그래, 이 직업이다” 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때부터 아나운서가 되기로 마음먹었죠. 결국엔 학교에 애착을 갖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좋은 계기로 작용해서 제 현재를 만들었네요. Q. ‘행사의 여왕’ 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아나운서를 넘어 MC 로도 활약하고 계신데요. 23년차 아나운서로서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제가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누구나 아나운서가 될 수 있다는 점이예요. 저도 처음부터 아나운서의 신뢰감 있는 목소리를 갖고 있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학원을 다녔죠. 하지만, 저는 학원을 다닐 때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느낌보다는 아나운서처럼 말하고, 아나운서처럼 행동하는 것에 집중했어요. 어떻게 좋은 목소리를 내는지 공부한다고 해서 모두 좋은 목소리를 낼 수는 없어요. 머리로 이해하고 몸으로 체득하는 게 더 중요하죠. ‘나는 이미 아나운서다’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일상에서도 늘 아나운서의 언행을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해요. 당시 이렇게 연습한 이유는 허수경 MC라고 당시 유명한 선배님이 계시는데, 그 분이 늘 버스에서도 지나치는 간판들의 문구를 아나운서처럼 읽고, 길을 걸으면서 현장을 중계하는 아나운서처럼 말하기 연습을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아나운서의 모습을 체득한 선배님의 말씀을 듣고 저도 이를 따라하게 되었어요. 저는 굉장히 내향적이고 발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학생이었어요. 교수님이 발표를 시키셨는데 발표하기 싫어서 덩치 큰 애 뒤에서 숨고 그랬으니까요. (웃음) 그렇게 소심하고 부끄럼 많이 타는 애가 아나운서로 변신하기 위해서 평상시에도 아나운서처럼 행동하는 것을 많이 연습하고 노력했죠. Q. 20년이 넘는 아나운서 경력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프로그램, 행사가 있다면? 뉴스 진행을 한 지 10년이 넘던 어느 날, 스튜디오에서 생방송 대기 중이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공허감을 느꼈어요. 항상 보도하는 내용은 정치분쟁, 살인사건, 갈등, 경제 불황 등 부정적이고 심각한 소식들이었고, 이에 저 스스로도 지치고 나태해졌어요. 그런 상황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 시작한 게 바로 행사 진행이었어요. 행사진행은 뉴스보도와 다르게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즐거운 소식을 전해주니 저도 즐겁더라고요. 그렇게 꾸준히 행사진행을 하다 보니 좋은 기회들을 잡을 수 있었어요. 일례로,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 윤석열 현 대통령까지 대통령 초청행사를 도맡아 진행하고 있어요. 국가원수를 모시고 행사를 진행한다는 게 저에게는 많은 자신감을 주고, 책임감을 주기도 한답니다. 많은 행사 중 특히 기억에 남는 행사를 꼽아보자면 6.25참전용사 초청 행사인데요. 자기 나라도 아닌데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전쟁에 참전하는 건 어려운 일이고 값진 일이거든요. 어린 나이에 죽을 각오로 싸우면서 지켜낸 우리나라의 현재모습을 보여드리면서 그들의 희생이 가치 있었음을 직접 보여드리는 행사기에 의미있고, 그 행사를 10년 넘게 진행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껴요. 희생에 대한 보은을 할 수 있는 뜻깊은 행사이고, 이를 제가 진행한다는 것도 굉장한 영광이고 자랑스러운 일이니까요. Q. 아나운서의 길을 꾸준히 걸어 나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사람들 만나고 도전을 좋아하는 성향이 저에게 원동력이 돼요. 새로운 도전이 새로운 인연, 새로운 길을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거든요. 에피소드를 하나 예로 들자면, 제가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결심하게 된 이후, 학교에서 언론계 진출한 선배님들을 수소문했거든요. 그렇게 해서 만난 사람이 저의 지금 남편인 왕종명 기자예요. 앞서 말했듯, 아나운서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도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제 성격 덕이기도 해요. 주변 친척들에게 수소문하고 도움을 청해서 아나운서의 삶을 간접 경험해보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된 거니까요. 도전이 가져올 결과보다는 도전하는 과정을 중시하게 되면, 도전 자체를 즐기게 돼요. 그리고 그 도전이 저에게 새로운 인연, 새로운 길을 맞게 하는 것 같아요. Q. 아나운서이기도 하지만 (주) YA의 경영자시죠, 어떤 회사인가요? YA는 아나운서 에이전시예요. 예전에 아나운서란 직업에 대해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어요. 아나운서는 백조와 같아요. 백조처럼 겉모습은 아름답지만, 그 품위있는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엄청난 발버둥치기가 필요한 것처럼 많은 한계에 부딪히곤 해요. 아나운서도 결국은 직장인이고, 월급도 높지 않은 게 현실이예요. 이러한 아나운서의 실상에 한계를 느끼게 되고, 나의 3,40대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뭘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후배들을 위한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회사를 차리게 되었고, 후배들을 제자로 양성했어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그 수명이 매우 짧아서 방송 출연 하나하나가 소중해요. 제자들이 좀더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 주고자 고민 한 끝에, 아나운서 에이전시까지 도맡아서 하게 되었어요. 아들을 낳고 3주만에 바로 회사를 차리게 되었죠. 현재 15년째 회사를 경영해오고 있습니다. YA는 스타트업이기도 해요. 대면 강의, 행사가 전면 취소되면서, 이 코로나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성균관대학교와 창업진흥원이 만든 초기창업패키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후, 법인을 세워서 AI 보이스 진단 플랫폼을 만들었어요. 목소리를 진단하고 음색, 발음, 성량을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정량평가해주는 서비스로, 곧 출시 예정이예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목소리인데, 좋은 목소리를 평가하는 것도 대부분 주관적인 평가잖아요. 이 서비스를 통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Q. 영어영문학과 96학번 윤희정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저는 모범생에 속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1도 안 했어요. 홍보모델 일 하면서 학교를 잘 안 나왔으니까요. (웃음) 그나마 학교에 왔던 때는 중어중문학과 다니던 제 가장 친한 친구를 보러 중앙도서관 입구에서 기다리던 때였네요. 방송활동을 2학년 때부터 시작하니까 학교 생활을 소홀히 했어요. 3학년 2학기가 되던 어느 날 학교에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3학기밖에 안 남았는데 졸업하려면 60학점이 넘게 모자라다는 연락이었어요. 그 때 마침 제가 출연하던 아침 프로그램이 폐지가 되고, 졸업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학교로 돌아왔죠. 다른 친구들은 졸업학기에 6학점 들을 때 한학기에 26학점씩 계절학기까지 다 들어가면서 학점 채우기에 열중했어요. 그렇게 1년 반을 열심히 공부해서 143학점을 다 채웠죠. 졸업할 때 모든 교수님들이 기립박수를 치시더라구요. (웃음) 하지만 저는 제가 이렇게 대학시절을 보낸 것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비록 학점에 열중한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 대신 많은 경험을 통해서 제 진로와 적성을 찾아내고 제가 앞으로 살아갈 길의 방향을 정했거든요. 그래서, 후배들에게는 다양한 경험을 하라고 해주고 싶어요. 알리미 활동으로 시작해, 홍보모델, 방송출연까지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해보니까 나 자신을 알아가게 되었어요. 진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20대들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이 친구들에게 학점보다는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아는 게 중요하고, 그럴 수 있는 시간이 20대가 유일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Q. 20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내 인생의 가치 “다양한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해라.” 이렇게 말해주고 싶네요. 저도 학교에 애착을 갖기 위해 시작했던 알리미가 제 인생에 큰 터닝포인트가 될지 몰랐어요. 하지만 새로운 기회에 계속해서 도전하다 보니 저에게 맞는 적성을 찾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학점에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도 애기해주고 싶어요. 학점보다는 많은 경험을 통해서 자기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내 인생에 있어서 그럴 수 있는 시간이 20대 밖에 없어요. 그러니 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만끽하는 멋진 20대를 보내세요. 응원합니다!

  • 세상을 보는 문의 문지기, 기자의 삶

    행정학과 85 이용문 동문

    세상을 보는 문의 문지기, 기자의 삶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CBS 정치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용문입니다. 행정학과 85학번입니다. 졸업 후 CBS에 입사해 경찰기자, 금융기자, 검찰기자, 정부부처 출입기자를 거쳐 경찰캡, 청와대 팀장, 여당팀장, 국회팀장, 재계팀장에 이어 정치부장과 산업부장, 경제부 선임기자로 일했고, 올봄부터 다시 정치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Q. 성균관대 언론인 동문회는 뭔가요. ‘성균관대 언론인 동문회’는 언론계에 종사하고 있는 성균관대 동문들의 모임입니다. 경향신문과 국민일보 등 중앙일간지, 매일경제와 머니투데이 등 경제지, 연합뉴스와 뉴스1 등 통신사, KBS와 MBC 등 방송사에 재직중인 기자와 PD, 아나운서 등 500여명이 회원으로 있습니다. Q. 행정학과 85학번 이용문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저는 아주 평범한 행정학과 학생이었지요. 입학 후 2학년까지 마친 뒤 현역으로 입대해 병장으로 제대했고 3학년과 4학년 시절을 주로 도서관에서 보낸 전형적인 행정학과 학생이었어요. 물론 모든 행정학과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보내진 않았을 거지만요. (웃음) Q.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동기는 무엇인가요? CBS에 입사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를 방문해 중앙도서관 앞에서 학과 후배 J 씨를 비롯해 선후배 몇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이 자리에서 그 후배의 말은 이랬습니다. “형이 기자 될 줄 저는 알았습니다”. 아마도 학창시절 제 말과 행동, 성향에서 그런 예감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J씨의 예감과 같은 제 속에 있는 어떤 속성이 기자가 된 동기일 수 있습니다. 행정학은 영어명칭이 public administration이죠. 공공의 영역에 대한 공부를 주로 한다고 생각하는데 기자라는 직업은 공직이나 교직을 제외하고 가장 공공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기자가 된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오랫동안 기자를 할 수 있는 원동력, 기자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초년병 시절인 1996년 우리 사회에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공권력 앞에서 일주일을 굶으며 버텼다는 ‘연세대 한총련사태’나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2006년에서 2007년 사이에 진행됐던 ‘한미 FTA협상’ 등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보고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이 기자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도되는 것이 아니라 ‘날 것’으로서의 현장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이 기자의 가장 큰 장점이고 그런 현장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제 성격이 27년 기자생활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Q. 기자라는 직업이 가지는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제 딸 아이가 2018학번으로 올해 대학 졸업반인데 중학교 시절 “저는 기자 안 할래요. 엄마랑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라는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가족의 여가생활을 돌보지 못했다는 반성 때문이었죠. 모든 출입처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경찰이나 검찰, 정당 출입기자들에게는 언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불규칙한 생활이 본인이나 가족들이 겪는 큰 어려움 중의 하나라고 봅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맡는 일에 대한 책임감이 중요합니다. 또 휴일을 지키지 못하는 데 대해 가족의 이해를 구하고 평소에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Q. 기자님의 관심분야는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에너지’입니다. 주된 에너지는 시대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하지만 기본적으로 현대인이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에너지고 이런 에너지의 확보가 정치와 경제적 분쟁의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Q. 오랜 기자 생활을 통해서 느낀 기자라는 직업이 갖는 가치는? 기자 개인이 갖는 가치라기 보다는 기자들이 하는 보도행위의 총합, 그것을 통해 형성되는 언론이라는 기능이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의 작은 한 부분을 저도 담당하고 있다는 자존감과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보도행위라도 그것이 모이면 큰 작용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Q. 기자가 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언론사에 입사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겠지요. 모든 입사시험이 마찬가지지만 그 시험의 단계별로 요구하는 능력, 예를 들면 어학능력, 상식, 글쓰는 능력, 발표하고 토론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각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면 그다음 관문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죠. 또 기자라는 직업을 목표로 세웠다면 평소에도 신문과 방송 보도를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통의 시청자나 독자보다는 더 깊은 관심 말이지요. 많이 보고 읽어야겠지요. 특히 사회와 국가, 세계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갖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Q. 언론계에 먼저 진출하신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내 인생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는 것이 최고”라고 하지요. 인터뷰 전반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공적인 영역을 다루는 ‘행정학’을 공부했고 공직에 입문하지는 않았지만, 언론은 나머지 직업 영역 가운데 ‘가장 공적인 업무’라는 관점에서 후회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라는 말이 요즘 시대와 잘 안 어울려 보일 수 있지만 무엇인가에 ‘열심히 몰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심히 몰두해 보시기 바랍니다.

  •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공학도의 이야기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 교수 김진웅 교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공학도의 이야기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 김진웅입니다. 저는 한양대학교 공업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에서 10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재직 중에 하버드대학교 물리학과에서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밟았습니다. 2011년부터 한양대학교 응용화학과에 임용되어 재직하다가 2019년 9월에 우리 대학으로 이직했습니다. 현재 콜로이드 및 계면공학연구를 수행하는 바이오헬스소재연구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2 과학기술진흥유공자 대통령표창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간단한 소감을 여쭙고 싶어요. 저는 지난 20여 년간 피부조직공학 및 생리활성 강화를 위한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마이크로플루딕스 (microfluidics) 상용화 (Hera Aquabolic 제품 적용, 2009년)와 단분산성 거대 액적 대량생산 기술 개발(Chanel Hydra Beauty 제품 적용, 2015년)과 같은 사업화 성공 사례들을 얻게 되었고 이러한 부분을 인정받아 과학기술진흥유공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축적한 연구개발 경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국가 바이오의료분야 기술경쟁력 강화를 위해 더욱 힘써 달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1학기가 끝이 났습니다. 연구자이자 교수자로서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수업이 없어서 시간적 여유가 생긴 만큼 연구에 더욱 집중할 수 있어 좋습니다. 저는 기초연구와 동등한 연구비 수주 수준에서 기업들과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피부를 타겟으로 연구를 하고 있어서 화장품 기업들과의 연구교류가 특히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화장품산업은 늘 새로운 마케팅 트렌드를 추구하거든요. 기술도 트렌드가 있어서 요즘 이슈가 되는 기술을 피부과학의 관점에서 조속히 검증하고 실제 제품에 적용하고자 하는 연구를 최근 심도 있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도전적이지만 기업들과 실질적인 개발업무를 하는 것은 정말 즐길 만 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융합촉진 옴부즈맨을 역임하셨다고 들었어요. 옴부즈맨 활동은 어떠셨나요? 우리 정부는 소관부처보다 상위기관으로서 규제개혁을 탑다운 방식으로 추진하는 국가 옴부즈만조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옴부즈만, 외국인투자 옴부즈만, 산업융합촉진 옴부즈만이 바로 3대 국가 옴부즈만입니다. 저는 산업융합촉진 옴부즈만으로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3년 동안 국가 신산업의 규제개혁을 주도하였습니다. 기업들이 개발한 혁신 신기술들이 낡은 법과 규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장되는 안타까운 일이 다수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고자 직접 기업의 애로를 듣고 규제를 선제적으로 개혁하여 신산업이 시장에서 제대로 자리 잡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의 지식과 경험이 옴부즈만으로서 국가 신산업에 도움을 줄 수 있었기에 힘든 직책과 업무였지만 큰 보람을 느낀 활동이었습니다. 과거 아모레퍼시픽의 연구원으로 재직하셨습니다. 기업에서의 ‘연구원 생활’ 은 어떠셨나요? 건강과 미를 위한 연구를 제대로 하려면 아름다운 마음을 먼저 가져야 한다고 당시 기술연구원장님께서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로부터 화장품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소비자들이 항상 찾는 명품 화장품들은 가격으로 가늠할 수 없는 큰 가치를 품고 있습니다. 그 가치를 조금 더 향상시키기 위해 피부생리활성과 피부보호에 효과적인 신기술을 개발하고, 수백 번 처방을 만들어 하나의 히트상품이 나옵니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개발을 직접 경험하며 진정 고객을 위한 연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바이오 헬스’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계신데요. 진행하셨던 연구 한 가지만 소개해 주세요. 제 연구 중에 가장 큰 성과는 “단분산성 거대 액적 대량생산 기술 개발”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1 mm 정도의 직경을 갖고 모두 동일한 크기를 갖는 에멀젼(emulsion)을 대량으로 제조하는 기술입니다 (그림 참조).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유일하게 하버드에서 특허를 갖고 샤넬에서 상품화한 기술입니다. 이 기술이 어려운 이유는 에멀젼 액적은 클수록 서로 붙어서 하나가 되려는 거동을 하기 때문에 쉽게 상분리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 현상은 절대 막을 수 없습니다. 열운동을 할 수 있는 크기 수준으로 액적을 충분히 작게 만들면 이 현상을 막을 수 있지만 계면활성제를 이용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한계를 지극히 물리적인 접근으로 해결하여 계면활성제 사용없이 안정한 거대 액적을 제조했습니다. 또한 다채널 마이크로플루딕스 (muti-channel microfluidics)를 이용하여 대량생산까지 성공했습니다. 하버드대(미)-ESPCI(프)-Capsum(프)이 산학연계하여 연구개발 상용화를 5년에 걸쳐 진행했고 현재 샤넬 이드라 뷰티 (Chanel Hydra Beauty) 라인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기초연구-원료양산기술-제품화기술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기술개발까지 성공한 사례입니다. 원천 특허 보유자로서 면세점이나 백화점에서 제가 개발한 제품이 판매되는 것을 볼 때마다 참 뿌듯합니다. ▲ 에멀젼 제조 기술로 제작된 샤넬 이드라 뷰티 라인 제품 (출처: 샤넬 공식 홈페이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삶의 원동력, 인간 ‘김진웅’ 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버드대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하는 동안 연구 욕심이 많아 지도교수님과 늦은 시간에도 미팅을 자주 했습니다. 논문 교정을 하시던 교수님께서 갑자기 “너는 연구를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우주평화를 위해서라고 웃으면 대답 했지만 솔직히 깊이 있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인류를 위해서다” 라고 아주 간단하게 말씀하시는데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연구에 대한 아무런 철학없이 실험하고 논문만 쓰려고 했구나’ 하는 생각에 창피한 마음도 들었고요. 그때부터 저는 ‘나의 연구가 어떤 식으로든 사람과 이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자’ 라는 다짐으로 살아가고 있고, 늘 진정성 있고 실용적인 연구결과를 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저희 연구실 학생들에게도 자주 하는 이야기에요. 지금껏 큰 성과들을 많이 일구어 오셨는데요. 앞으로의 계획이 듣고 싶어요. 요즘 생활환경이 악화되면서 피부 기능이 점점 저하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좀 더 건강한 피부조직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근 출시되는 피부외용제품들이 피부의 근원적 기능을 회복하는 성능을 소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 연구실에서도 피부조직 재생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바이오소재 개발연구를 집중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생물에서 직접 얻은 천연소재를 이용하기 때문에 기술성능과 안전성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박테리아 유래 천연 나노섬유를 이용한 계면활성제 및 피부접착제 개발, 미세조류 유래 천연엑소좀 (exosome, 그림 참조)을 이용한 피부상처치유 기술개발이 해당됩니다. 앞으로 피부조직재생에 대한 심화된 연구개발을 통해 보다 건강한 피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화학공학/고분자공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전하는 한마디. 공학도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취업과 진학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우리 학생들이 공학도 본연의 역할을 염두에 두고 공부를 한다면 삶에 대한 목표가 분명해지며 적극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 ‘동사’의 꿈을 찾으세요

    사학과 90 최태성 동문

    ‘동사’의 꿈을 찾으세요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90학번 사학과 최태성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Q.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90학번 최태성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제 학창시절 별명이 사문난적이었어요. 이건 흑역사인데, 저희 과 친구들이 저를 이렇게 불렀어요. 우리 사학과와는 색깔이 다른 이질적인 친구라는 뜻으로 이 별명이 붙었는데요. (웃음) 저는 대학생활 중 취업, 학업 관련 불안감이 커서 새벽부터 중앙도서관에서 토익이나 토플 같은 영어공부를 많이 하고, 학교 생활보다는 학점관리에 열중했었죠. 제가 성대를 다니던 시절은 80년 항쟁의 끝자락에 있어서 여전히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남아있을 시기였고, 제 동기들은 광장으로 나섰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지 못하고 도서관에 박혀 있어서 친구들이 ‘사문난적’이라고 별명을 붙여주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마음의 빚이 있어요. 친구들과도 함께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의논하고 고민하지 못하는 대학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나중에 내가 성공하면 과거 못했던 것들에 동참해야겠다고 다짐했었어요. 물론 비겁한 변명처럼 들리긴 하지만, 그 생각을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하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살다보면, 제가 그 무리와 함께 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양상이 크게 두 가지가 나타나는데, 하나는 자기합리화를 위해서 완전히 등을 돌려버리는 거예요. 또 다른 하나는 상대방을 영원히 지지하는 모습으로 남는 거죠. 저는 그래도 전자보다는 후자 쪽에 속해요. 그 당시 저와 같이 대학을 다녔던 동기, 선후배분들이 우리 사회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그들의 시간을 내어주었던 것을 저는 아직 잊지 않고, 그들을 영원히 지지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Q. ‘별별한국사 연구소’를 통해서 많은 기부 및 선행을 실천해오고 계신데요, ‘별별한국사 연구소’를 소개해주세요. 이름의 유래는 정말 간단한데요. 제가 큰 별쌤이니까. 중의적 의미로, 모든 별의별 역사를 다 공부하고. 큰 별과 별님들이 함께 하는 한국사. 이런 뜻으로 ‘별별한국사연구소’라고 이름지었어요. 요즘 한국사 능력검정 시험을 응시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께 공부할 수 있는 영상을 무료로 공유하는 일종의 공장이죠. 제가 공유교육에 관심이 있는지라, 누구나 다 같은 양질의 교육 컨텐츠를 공부할 수 있도록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작가로서 책도 쓰고, 방송 출연도 하고, 강연도 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한국사 컨텐츠 공장이라고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Q. 성균관대학교 모교 기부, 사랑의 열매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유튜브 활동을 통해 얻은 수익금 기부 등 선행을 꾸준히 이어오시고 계신데요, 나만의 기부 철학이 있다면? 전 사실 가장 평범하고 계산적이고 어찌 보면 이기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제가 초, 중, 고, 대학생활을 너무 가난하게 살아오다 보니까 본능적으로 계산이 돼요. 저도 그게 싫은데도 불구하고 저도 모르게 나한테 유리한건지 아닌지를 계산하게 되는 본능이 있어요. 어린시절부터 생존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기에, ‘기부’가 이기적인 본성을 가진 저에게는 결코 익숙한 것은 아니에요. 저에게 있어서 기부는 천성이 아닌 노력의 결실이죠.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고 익숙하지는 않지만, 저는 이렇게라도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기부가 삶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존경스러운 분들이 많은데, 저는 이게 잘 안돼요. 그래서 저는 ‘기부’라는 약속을 할 때 저를 내세우지 않고 저와 함께하는 수험생들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야 강제성이 생기기 때문이죠. 약속을 하면 그건 누군가와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고, 이를 통해서 계산적인 저의 본성은 사라지게 되고 저를 움직이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혹시나 연습을 꾸준히 하다 보면 저도 언젠가는 기부가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진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갖고 꾸준히 기부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Q. 왜 역사를 배워야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본질적으로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살면서 막연하고 불안할 때 흔들리지 않고 한발한발 전진할 힘이 무엇인지와도 관련이 있죠. 우리의 삶의 여정이 힘든 이유는 끊임없이 자신을 누군가와 비교하는 과정때문이거든요. 우리는 ‘나는 왜 저걸 할 수 없을까’, ‘나는 왜 저곳에 갈 수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상처를 자꾸 줘요. 타인과 비교하게 되는 순간부터 불행은 찾아오는 거거든요. 여기서 명심해야 할 점은 비교는 오로지 자신과 하는 거예요.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나아졌는지, 내일의 나가 오늘의 나보다 나아질 수 있는지를 비교하는 거랍니다. 근데 우리는 이걸 잘 못하고 있어요. 이렇게 되면 자존감이 무너지고, 자괴감마저 생기게 되어버려요. 그렇다면 거기에 흔들리지 않는 법, 혹은 나를 보호하고 나를 아껴줄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과거 나와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거예요. 선조들의 고민과 선택을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자신의 고민과 선택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습하는 거죠. 따라서, 저는 역사를 배우는 본질적인 목적은 나만의 색깔을 찾고 뚜벅뚜벅 걸어 나갈 힘을 가짐으로써 행복해지기 위함이라고 생각해요. Q. 대립과 갈등이 만연한 현대사회, 역사가 그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죠. 각 시대마다 그 시대가 해결해야할 과제가 있어요. 개항기 시대 때는 신분제로부터의 해방, 일제강점기때는 식민지배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현대사회에는 가난과 독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과제가 있어왔죠. 이에 이어서, 저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할 과제는 바로 증오, 혐오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이대남, 이대녀 이런 수식어들이 붙으면서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문화가 형성됐어요. 원래 정치라고 하는 것은 갈등과 대립의 요소를 하나로 치유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이것을 악용해서 표심만을 얻으려고 하는 모습을 통해서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렇기에 우리 시대의 과제는 바로 이 증오와 혐오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역사는 이 과제에 어떤 해답을 제시해줄 수 있을까요?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300년 전의 예송논쟁 당시, 상복을 입는 기간에 대한 문제로 격하게 대립하고 심지어 정권교체까지 이뤄져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갈등하고 대립하는 모습이 300년 전의 예송논쟁과 매우 비슷하죠. ‘굳이 이런 것 가지고 싸운다고?’ 이러잖아요. 그렇다면 300년 이후 우리의 미래 후손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요? 우리는 여기서 과거를 직시하게 돼요. 역사적 관점은 우리사회의 뜨거운 현장에서 조금 떨어져서,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과 시선을 갖게 해주고, 이를 통해 우리 시대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에도 도움을 줘요. 이게 바로 역사의 쓸모죠. Q. “꿈이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한다. 그리고 그 롤모델을 역사에서 찾으십시오.” 본인의 저서에서 이런 문구를 쓰셨어요. 최태성 동문의 역사 속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제가 항상 롤모델로 꼽는 분이 있는데, 우당 이회영 선생이에요. 당시 한말,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땅값이 제일 비쌌던 명동은 이회영 형제의 소유였어요. 그들은 일제강점기에 엄청난 값의 명동 땅을 모두 다 팔아서 만주로 넘어가 3년만에 독립운동기지를 세웁니다. 3년 뒤 그들이 남긴 일기에는 너무 배가 고파서 옆집의 옥수수를 뜯어가는 장면이 등장해요.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하더라고요. 그리고 질문을 하게 됐어요. ‘그냥 시대에 조금만 타협하고 불의를 눈감았다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이분들은 이런 인생을 사셨을까?’ 라고 말이죠. 그 답은 이회영 선생이 60년 평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있었어요.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이요. 우리는 인생이 한순간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것들을 인지하고 사는 삶과 그냥 사는 삶은 그 마지막이 전혀 다르다는 거예요. 우당 이회영 선생은 항상 선택의 순간에 스스로 자신에게 항상 질문했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일생’으로 답하신 분이에요. 제가 감히 그분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저도 그 질문을 심장에 가지고 살면서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있을 때 매일 다짐해요. 저 역시 이회영 선생의 따라쟁이라도 되고 싶으니까요. (웃음) 그래서 의사, 검사, 교사라는 ‘명사’의 꿈보다, 그 직업을 가지고 우리사회에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동사’의 꿈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어요. Q. 최태성 동문이 소망하는 ‘동사’의 꿈은 무엇인가요? 저는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10년에서 15년 정도 남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 시간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동사’는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아요. 저는 살아갈 삶보다 죽음을 맞이하는 쪽에 더 가까워지고 있어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마무리할 수 있을지 고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예전에 세계사 학회에서 강연 할 때, 제일 안타까웠던 점이 학생들에게 사료로서 보여줄 영상이 별로 없다는 거였어요. 물론 지금은 역사를 다루는 유튜브나 여러 방송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들은 학생들의 교과과정에 맞는 영상은 아니더라고요. 그렇다고 직접 유적지를 답사하는 것도 불가능하죠. 모든 학생들이 세계 곳곳의 유적지를 갈 수 있는 형편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학생들을 위한 역사 유적지의 생생함을 담은 영상이 있으면 좋겠다는 동사의 꿈이 생기게 되었어요. 바로 ‘세계사 교과서에 있는 고대 유적지들을 모두 방문하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역사를 공유하는 것’. 이것이 제 마지막 동사의 꿈이에요. 덕분에 저도 세계 여행도 하고 그 결과물을 모두 함께 공유할 수 있고,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공과 사가 합치되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해요. 저는 이 동사의 꿈이 저에게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응원의 메시지 성대에서 보낸 4년이라는 시간은 저를 지금까지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었어요. 성대에 오고나서 비로소 저는 제 자신에게 “너는 누구야?” 라는 질문을 하게 됐어요. 제가 정말 사랑하는 동기, 선후배들과 술도 마시고 과방에서 이야기하면서, 세미나를 하면서, 그들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통해 제가 갖고 있던 껍질을 깨고 비로소 세상밖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생각을 통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성균관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저의 가치관과 신념이 되었어요. 여러분들에게 성대는 어떤 존재인지, 여러분들이 성대를 다니는 이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시간이 지났을 때, 여러분이 한 번씩 성균인으로서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성균관의 역사는 조선의 성균관부터 시작됐죠. 조선 성균관 유생들과 성대 학생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그들은 항상 사회가 정의롭지 않을 때 그에 대해 ‘아니야’라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우리 사회에 따듯한 시선을 가지고 본인들이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던 그 성균관 600년의 역사를 지금의 여러분도 공유하고 있다고 확신해요. 그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학교에 여러분들이 지금 다니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그 600년의 역사를 이어서 쓰고 있는 자랑스러운 인재들이란 말이죠. 여러분들도 앞으로 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계속해서 써 나갔으면 좋겠네요. 응원합니다!

  • 정도(正道)를 걷는 삶

    상학과 58, 박영수 동문

    정도(正道)를 걷는 삶

    Q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상학과 58학번 박영수입니다. 효성물산, 선경 등을 거쳐 96년까지 진로그룹의 회장으로 재직했습니다. 2019년까지 본사가 스위스에 있는 은행에서 자문을 맡았으며, 현재는 은퇴하여 영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장학금을 전달하기 위해 이렇게 일년에 한번씩 모교를 찾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Q2. 요즘 어떨 때 가장 행복하신가요? 회장님의 취미가 궁금해요. 정도를 걸으며 사회에서 큰 몫을 하고 있는 후배들이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 정말 흐뭇합니다. 그 친구들에게 선배님 소리를 들으며 근황을 나눌 때 행복하지요. 글쎄요 취미는 별 게 없는 것 같네요. 독서와 명상을 즐기고, 책은 주로 역사책을 많이 읽습니다. Q3. 모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해마다 학교에 장학금을 기탁하시는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4·19 혁명 이후 부정 축재자를 처벌하는 과정에서 시멘트 회사인 대한양회가 우리나라 최초의 장학재단인 삼일장학재단을 만들었고, 전국 대학을 상대로 많은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한달에 30만원. 등록금 내고, 하숙비도 내고, 책도 사서 볼 수 있는 큰돈이었지요. 서울대학교에는 모든 단과대학에 이 장학금이 주어졌고, 타 대학에는 3개에서 5개정도 배당되었고, 우리 성균관대학교에는 딱 두 명에게 이 장학금이 배당되었습니다. 문과에서 한 명, 이과에서 한 명 총 두명의 학생이 이 삼일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어요. 운이 좋게 그 혜택을 내가 문과 대표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3학년 말부터는 특대생 혜택을 반납하고, 이 삼일 장학금을 받아 학교를 다녔습니다. 삼일 장학 재단에서 학부 졸업 후에도 2년 더 나를 지원해준 덕에 대학원까지 장학금으로 졸업할 수 있었어요. 총 6년간 장학금을 받아 졸업까지 하고 나니, 언젠가 내가 받은 것을 반드시 모교와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짐을 지금도 찬찬히 이뤄나가는 중입니다. 나는 성균관대학의 덕을 참 많이 봤으니까요. Q4. 대학 재학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학부 3학년 때, 4.19 혁명이 있었습니다. 우리 대학에서도 학생 시위의 움직임이 있었지요. 그런데 정부에 협조하는 운영위원회 녀석들이 학생들에게 공포심을 주면서 교문을 막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때는 돈 많고 힘이 세면 학생회장 시켜주던 때니까요. 그 광경을 보고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느꼈고,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때 대의원회 의장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학생회가 행정부라면 대의원회는 입법부의 역할을 하는 기구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한 끝에 ‘학점 평점이 B학점 이상인 자만이 학생회장에 출마할 수 있다’ 라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인데, 적어도 그런 면에서 타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 학생 대표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 법때문에 몇명이 사퇴를 했는지 모릅니다. 숙소에 찾아와 나를 때려죽이겠다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더 있는데, 당시 4개 단과대학의 장들이 모두 사퇴하고 단 한 명의 운영위원장이 남았어요. 그게 바로 지금 총동문회장을 하고 있는 류덕희에요(웃음). 내가 학교를 떠나고 나서는 이 법이 어찌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후배를 위해 학교를 위해 이거 하나는 만들고 갔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Q5.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막 나왔을 때 회장님은 무엇을 목표하고 계셨나요? 나는 원래 법대에 진학하고 싶었어요. 근데 내 형님께서 대학 원서를 쓰기 직전에 강력하게 상과 진학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라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나도 그런 형님의 말에 동의했고, 결국 상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지요. 이러한 배경이 있어서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소명 의식이 있었습니다. 처음 사회에 나와서는 은행에 잠시 있었습니다. 그때는 은행이 가장 좋은 직장으로 손꼽히던 시대여서 내 뜻보다는 주변의 뜻으로 은행에 입사를 했어요. 하지만 내 길이 아니다 싶어 두 달 가량을 다니다 은행에 사표를 내고 효성물산에 입사시험을 봤습니다. 그때가 효성이 막 삼성으로부터 분리되어 첫번쨰 공개채용을 하던 때입니다. 61년에 졸업해 군대를 다녀왔고 63년 가을에 시험을 본 뒤 64년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Q6. 뉴욕에서 일을 하셨고, 지금은 영국에 살고 계세요. 한국을 떠나 사는 것은 어떠신가요? 지금의 삶을 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해외에 나가게 된 것은 스스로 원했던 것이 아니랍니다. 뉴욕과 영국 모두 일 때문에 부름을 받아 간 것이지, 계획된 바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뉴욕에는 초대 뉴욕지사장으로 파견되어 5년간 근무하고 1976년 귀국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유공인수 위원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회사로부터 영국에 직접 가서 유공 원유 공급을 원활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고민이 무척 되었지만, 십 몇 년을 근무한 회사에서 도움이 간절하다고 하니 이를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잘 갖춰진 환경에서 아이들 교육에 신경 써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게 고심 끝에 1981년 2월 영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는데, 이러나 저러나 영국에 정착해 아들 둘을 잘 키워 결혼까지 시켰으니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에 가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 중 하나가 어린 우리 아이들이었는데, 형제 둘이 모두 영국 최고의 명문 중등학교인 이튼 스쿨에 입학해주었어요. 작은 아들은 수석 입학, 큰 아들은 수석 졸업을 했지요. 생각해보면 아직도 기특하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Q7. 우리에게 친숙한 맥주, '카스' 를 만드셨다고 들었어요. 제품 개발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처음에 진로에서 맥주 합작 추진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진로에는 오직 소주와 고량주 뿐이라 진로그룹의 수뇌부에서 사세 확장을 위해 나를 찾은 것 입니다. 후발 메이커인 진로가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일본이나 유럽의 맥주보다 질이 좋고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는 브랜드와의 합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확실한 품질의 ‘쿠어스’ 맥주를 선택하게 되었지요. 처음엔 쿠어스를 설득하기 위해 직원을 보내 봤습니다. 하지만 어림도 없었어요. 한국의 작은 소주 회사인 진로를 그들이 알리가 없으니 말이지요. 마침 위스키 브랜드 조니 워커의 회장이 내 옥스포드 경영학부 동창이에요. 그래서 주류 업계 거물인 그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내가 직접 찾아가 쿠어스와 함께 일하고 싶은 이유를 솔직하게 전해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실제로 쿠어스에 찾아가 쿠어스가 제일 좋은 맥주라고 생각한 이유를 직접 전했습니다. 진심이 통했는지, 긍정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긍정적인 답변이라 함은, ‘좋은 물을 찾아라. 일단 좋은 물을 찾아오면 다음은 생각해보겠다’ 였습니다. 한번은 대차게 거절을 당했으니 이만하면 긍정적인 답변이지요. 미션을 받았으니, 그때부터는 질 좋은 물을 양껏 확보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런데 질 좋은 물을 양껏 확보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어요. 물의 양은 알 수 있다 해도 물의 질을 판단하는 기술력이 당시 한국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조니 워커 회장에게 전화를 했지요. 상황을 설명하니 그 친구가 그럴 줄 알았다며 내게 힌트를 주었습니다. 그가 밝힌 비책은, 바로 소련의 과학자들을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곧바로 소련으로 향했고, 그들에게 수원지 탐색을 부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곳을 찾아냈고, 그곳에서 카스가 탄생하게 됩니다. 카스Cass 라는 네이밍도 내가 직접 한 것이에요. C는 쿠어스의 C이고, 뒤에 오는 글자는 맥주를 개발한 사람의 이니셜을 따줬습니다. Q8. 오랫동안 리더의 자리에 계셨습니다. 직접 그 자리에서 경험하며 깨달은 리더의 자질은 무엇인가요? 리더의 자질은 아주 간단합니다. 성실하고, 자신감은 충만하되, 상식이 통하는 인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일단 출발은 저자세에서 겸손해야 하지요. 그래야 성실할 수 있으니까요. 또한, 자신감을 기반에 둔 결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확신이 드는 때에 밀어 부칠 수 있는 사람만이 리더입니다. 또한 상식이 통한다는 것은 곧 정도를 걷는다는 것입니다. 정의롭지 못한 길에 미혹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리더가 아니지요. 정리하자면 평소에는 저자세를 유지하되, 결단의 순간에는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피력할 수 있어야하며,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Q9. 마지막으로 학교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 제게 큰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 있다면, 좀 더 일찍 귀국하여 국가를 바른 길로 이끌지 못한 것입니다. 비이성적인 판단이 난무하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감정과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를 바로잡고 희망찬 정도(正道)의 미래로 나라와 국민을 인도할 후배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인공위성 데이터와 인공지능 기법의 적용을 통한▼가뭄관측지도 제작 기법 개발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최민하 교수

    인공위성 데이터와 인공지능 기법의 적용을 통한가뭄관측지도 제작 기법 개발

    건설환경공학부 최민하 교수가 EBS 젊은 우주과학자 기획에 소개되어, 위성 관측과 가뭄 지도 제작 기술을 소개하였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가뭄에 의한 피해가 급증함에 따라,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존의 기상 관측방법은 국지적인 기상 상황만을 파악할 수 있어, 넓은 지역에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가뭄을 관측하기에 많은 한계가 있었다. 이에 인공위성을 활용하여 수자원을 관측하고자 하는 다양한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최민하 교수 연구팀은 오랫동안 인공위성을 활용한 다양한 수자원 관측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고, 특허 “인공위성 영상 자료를 이용한 동북아시아 가뭄지도 제작 시스템”을 등록하는가 하면, 세계적인 학술지를 통해 수자원과 관련된 지구 에너지 흐름, 환경 등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인터뷰 전문-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수자원전문대학원 그리고 수자원원격탐사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는 최민하입니다. 저희 연구실은 위성 영상을 주로 활용해서 전 지구적인 관점 특히 동북아시아 지점에서 물의 순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EBS 2022. 06. 17. 젊은 우주과학자 기획 4편 – 건설환경공학부 최민하 교수 Q. 인공위성으로 어떻게 물의 순환을 관측하나요 위성 영상이 많이 발전이 되고 그런 인공위성들에 탑재된 센서들이 실제로 지표면, 그리고 여러 가지 인자들을 탐지하게 됩니다. 그런 것들을 저희들이 데이터를 받아와서 우리들이 활용할 수 있는 그런 인자들을 개발하고 그런 것들을 또 활용해서 필요한 데에 해석하게 되는 거죠. Q. 위성 데이터를 토대로 '한반도 가뭄지도'를 만들었는데요 지구관측위성에서 나오는 자료들을 활용해서 2차원적 또는 3차원적으로 광역적인 동북아시아 전체에서의 가뭄 현상이라든지 그런 현상들을 조금 더 정확하게 예측하고 분석하는 그런 프로그래밍을 저희들이 특허를 냈었습니다. 그런 가뭄 현상들을 예측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되면, 실제로는 가뭄에 대응하기 위한 물의 양들을, 예를 들어서 저수지에 있는 물의 양들을 준비하고 있다든지 아니면 실제로 조금 물을 아껴 쓴다든지 여러 가지 정책들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민하 교수 연구팀이 제작한 위성기반 한반도 가뭄지도 Q.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가뭄의 특징이 있나요? 지금 특징은 플래시 드라우트(급성 가뭄)라고 하죠. 그러니까 가뭄이 되게 급박하게 생겼다가 급박하게 사라지는 그런 것들이 폭염과 같이 몇 년 전부터 폭염이 오면서 가뭄이 같이 생기거든요. 그런 현상들이 실제로는 농업적 가뭄(토양수분 부족)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수문학적 가뭄(지표수·지하수 부족)으로 발전을 하는데요. 실제로 토양수분이 급격히 감소한다든지 증발산이 급격히 (늘었다가) 감소한다든지와 같은 그런 현상들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플래시 드라우트에 대한 그런 연구들이, 필요성이 많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최민하 교수 연구팀이 관측한 동북아시아 가뭄의 변화양상 Q. 위성 이용한 기후 관측은 얼마나 발전했나요 한 오십 년 전에 지구 관측을 목적으로 과학 위성들이 많이 개발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오십 년 동안 급격한 발전을 했고요. 여러 가지 다양한 센서, 다양한 위성들이 현재 약 5천 개 정도가 지구를 맴돌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데요. (위성궤도인) 500km, 600km 상공에서 지구 표면을 관측하려고 하면 대기를 통과하면서 여러 가지 오차라든지 여러 가지 왜곡들이 많이 생기게 되는데요. 그런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센서들을 더 다양한 각도로 개발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예를 들면,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 센서, 대기 보정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센서, 여러 가지 다각도 방면에서 센서들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한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들이 있고요. 그런 데이터들을 빅데이터 형태로 같이 융합하고 재해석하기 위해서 인공지능이라든지 다양한 기법들 이 개발되고 같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Q. 인공위성 데이터 활용 연구, 왜 중요한가요 실제로 예전에는 데이터가 좀 부족해서 사실은 데이터가 되게 많이 아쉬운 실정이었는데요. 지금은 데이터가 없어서 분석을 못하는 그런 건 아니고요. 실제로 말씀하셨다시피 많은 데이터 중에 좋은 데이터들을 잘 선별해서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이 지금의 관건 중에 하나입니다. 제 생각에는 해외 선진국에 비해서 실제로는 위성이 아무리 좋은 센서에, 좋은 탑재체가 있어도 사실은 그걸 활용하는 인재가 문제거든요. 새로운 인재들을 개발하는 그런 분야에 조금 더 역량을 쏟으면 우리도 좋은 결과를 내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 삶을 즐기며 학문을 탐구한다

    식품생명공학과 부교수 우한민 부교수

    삶을 즐기며 학문을 탐구한다

    삶을 즐기며 학문을 탐구한다 우한민 교수는 2021년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 국제 학술대회 및 정기학술대회에서 우수한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주)대상에서 후원하는 ‘대상(주) 학술상’을 수상하였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2016년도에 식품생명공학과에 부임한 우한민 교수라고 합니다. 부임 전에 한국에서 생물화학공학으로 학사, 석사학위를 받았고 독일에서 미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 미국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근무를 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생물공학 연구를 수행했었어요. Q. 식품생명공학과를 소개 해주세요. 식품생명공학은 생명공학 분야의 종합 응용 학문입니다. 최근 "食(Food)"의 분야는 전통적인 식품 이외에 Healthy Food, Medical 또는 Pharma Food, Beauty Food 등 다양한 분야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식품생명공학은 바이오 소재를 원료로 다양한 생명공학기술을 접목시킨 식품 및 의약품, 화장품 등에 관련된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간이 질병 없이 아름답고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첨단 생명공학에 관한 이론 및 기술을 연구하는, 우리가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응용 학문 분야입니다. 식품생명공학의 매력은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항상 곁에 있는 친구와 같습니다. 이유식에서부터 노인, 환자식까지 삶의 희로애락을 같이 하고 있어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NASA의 우주비행사들을 위한 우주식(食)까지 기본에서 첨단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식품생명공학의 매력은 인간의 삶을 즐길 줄 아는 학문입니다. Q. 센터장으로 계신 본교 바이오파운드리 연구센터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식품생명공학을 포함한 생명공학연구는 과학자들의 땀과 신성한 노동에 의해서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비약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생명공학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해졌습니다. 물리적 공간과 노동의 한계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필요하게 되었고, 최근 눈부신 로봇과 AI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생명공학분야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바이오 파운드리가 그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이오 파운드리는 목적에 맞는 설계도에 따라 로봇 유닛으로 구성된 자동화 플랫폼을 활용하여 다양한 생명공학 연구를 수행하는 일을 무인으로 수행하는 시스템입니다. 우리 대학은 반도체 파운드리를 넘어 로봇기술과 생명공학기술이 융합하는 자동화 바이오 파운드리(Biofoundry)를 국내 최초로 구축하였으며, 바이오 파운드리 연구센터를 1월 1일 개소하여 바이오 헬스 분야 고부가 신산업 창출 및 유니콘 기업 성장을 위해 초고속 바이오 신소재 개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센터는 자동화운용팀, 생명정보화팀, 산업화팀으로 역할을 나누어 긴밀하게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항상 열린 바이오 파운드리를 추구하고 있어 언제든 방문하시고 좋은 아이디어를 무인으로 구현하면 좋겠습니다. Q. 교수님의 관심분야인 ‘산업미생물’은 무엇인가요? 그와 관련해서 어떤 연구를 진행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생물공학은 식품생명공학에서 바이오식품소재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예를 들면, 라면에 들어있는 라면스프 내 조미 성분인 MSG(Monosodium glutamate; 글루탐산 나트륨)를 만들고 새로운 화합물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라면 이외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적당히 섭취하고 있는 조미료와 감미료는 미생물을 이용해서 설탕을 발효하여 MSG와 핵산 등을 공업적으로 만들어 냅니다. 이때 사용되는 미생물이 산업미생물입니다. 저희 연구실은 식품분자 생물공학 연구실로, 산업미생물을 통하여 지구를 보호하고 인간 생명을 구하기 위한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산업미생물에서 식물 및 동물의 유전자를 도입하여 새로운 화합물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로써, 채취하기 어려운 식물의 유효성분을 단순한 미생물 발효를 통해서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고, 동물에서 추출하던 유효성분을 역시 미생물 발효를 통해서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연의 미생물은 앞에서 언급한 화합물을 생산할 수 없는데요, 유전공학 기술을 통해서 대사 회로를 재구성하여만 신규 화합물을 설탕으로부터 합성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학문 분야를 대사공학이라 하고, 제가 열정을 다해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Q. ‘산업미생물 개량을 위한 다양한 대사공학 및 합성생물학 도구의 개발과 고부가 산물 생산 연구’를 수행한 공로로 지난 6월 24일 대상 (주) 학술상을 받으셨습니다. 해당 연구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앞서 산업미생물을 이용하고 개발할 때 유전자의 조작기술이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최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여 산업미생물의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을 저희 연구실이 개발했고, 바이오 파운드리에서 중요한 유전공학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 기술을 활용하면 산업미생물의 개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으며 정밀하게 유전자를 교정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유전자 조작 속도와 정밀도를 높인 새로운 생명공학 도구로 산업미생물부터 다양한 바이오 신소재 개발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연구 계획은 무엇인가요. 산업미생물로 MSG와 같은 식품 소재의 생산기술을 뛰어넘는 의약품 바이오 신소재 생산 연구를 해보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학교 교목인 은행나무 잎 유효성분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알츠하이머 치료나 비만 치료 성분으로 쓰일 수 있는 칸나비노이드 등의 사회적 가치를 제공할 바이오 신소재를 개발할 계획입니다. 저희 연구실은 최근 AI 기술을 활용하여 유전자의 발현 조절을 예측할 수 있는 딥러닝 프로그래밍을 개발했습니다. 딥러닝 기술, 로봇기술, 유전자 가위 기술을 통합하여 희귀 바이오 소재를 개발한다면 연구개발 성공 시점을 좀 더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희 연구실의 대학원생들은 뛰어난 자질이 있어서 제가 좀 더 노력하여 학생성공과 교수성공의 모델로 다음에 또 찾아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학문을 탐구하는 데 교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는 무엇인가요? 저희 학생들과 연구실 대학원생들에게 두 가지를 항상 당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ACT입니다. ACT는 Aim, Control, Tool의 약자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도구를 갖고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공학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서 접근하거나 사회적인 문제를 고민할 때 효과적인 접근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학문 탐구에서도 ACT의 신념을 갖고 ACT(행동하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둘째는 즐기는 것입니다. 연구는 끝이 없습니다. 논문 출판을 위해서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학위 취득을 위해서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논문과 학위 취득은 연구 활동의 과정에서의 얻어진 것으로 서로 공유하는 스토리와 같습니다. 따라서 논문을 발표하고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인생을 즐기듯이 학문 탐구도 긴 호흡을 갖고 즐기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식품생명공학과 학생들에게 응원과 조언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식품생명공학과 학생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작은 응원을 하고 싶습니다. 대학 생활 동안 현실적인 다양한 문제를 경험하게 됩니다.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계속 고민하다 보면 결국 철학적인 문제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각자 고민과 사색 없이 현실적 문제를 마주하게 되면, 다소 보수적인 결론이나 시대가 제시하는 정답(?)을 따라갑니다. 그렇다고 ‘배고픈 철학자가 되어라’라는 말은 아닙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삶의 본질은 고민하고 자기의 기질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열정을 찾는 방법을 발견하면 좋겠습니다.

  •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춤을 춘다

    무용학과 교수 김경희 교수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춤을 춘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춤을 춘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1990년부터 무용학과 교수를 맡고 있고 현재 무용학과장을 맡고 있습니다. 제가 다녔던 서울 예술고등학교 무용과에서 발레 교사로도 있었고, 국립발레단 단원으로도 있었습니다. Q. 무용학과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우리 학교 무용학과는 1989년에 첫 신입생을 선발했습니다. 처음 1년 동안은 율전 캠퍼스에서 수업을 했고, 1990년부터 명륜 캠퍼스에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학교에서 수선관 본관 옥상에 임시로 만들어 준 무용실에서 실기수업을 진행했습니다. 현재 한국무용은 전은자 교수님, 컨템퍼러리 댄스는 김나이 교수님, 그리고 발레는 제가 맡아 학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 실기 전공을 기반으로 무용 관련 이론을 지도해 무용학과 학생들에게 졸업 후 무용수뿐만 아니라 무용 관련 전문 분야로의 진로를 확장시켜 주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Q.교수님께서 무용이라는 분야, 특히 발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권유로 동네 무용 학원에서 한국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예원학교라는 예술 전문 중학교에 입학해 임성남 선생님의 발레 수업을 받게 되면서 발레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무엇에 끌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반복적이지만 조금씩 다르게 진행되는 연습이 너무 재미있었고 그 시간들이 행복했다고 기억됩니다. Q.배경지식이 없다면 ‘무용’ 분야는 진입장벽이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의 시각에서 무용은 무엇인지 표현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용이란 ‘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무용이란 한자로 ‘舞踊’인데, 이는 일제 강점기 때에 일본 학자가 만든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한국에 유입되어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무용’이라고 하지만, ‘춤’이라는 표현이 본질적인 의미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인 욕구를 표현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본능적 욕구가 ‘움직임’으로 표현됐을 때, 그것이 바로 ‘춤’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춤을 춥니다. 춤을 춤으로써 자신의 기분이 좋아지고, 타인과도 좋은 유대감을 가질 수 있게 되며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됩니다. Q.지난 6월 12일, ‘2021 글로벌 워터댄스’에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행사였나요? 2008년 영국의 어느 대학에서 ‘Dance & The Environment’라는 주제로 회의를 했습니다. ‘움직임 분석’을 연구하는 무용학자들이 환경문제의 주제를 ‘물’로 정했습니다. 무용의 움직임과 물의 특성에는 ‘흐른다’는 공통된 특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물’의 중요성을 시사하기 위해 다 함께 ‘춤’을 춤으로써 모두의 다짐을 보여주자는 취지로 ‘Global Water Dances’라는 행사를 만들었습니다. ‘다 함께 춤추자’는 현대 무용 이론가이자 안무자 Laban이 주장한 ‘Movement Choir’에서 착안한 것으로 같은 움직임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높이자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의 ‘플래시몹’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글로벌 워터댄스 행사는 2011년에 처음으로 전 세계의 57개 도시에서 ‘세계 대양의 날’이 있는 주말에 동시에 진행됐습니다. 올해 2021년에는 10주년 행사로 전 세계의 138개 도시에서 각 나라의 현지 시간에 맞춰 비슷한 시간대에 진행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처음으로 참여했으며 처음에는 청계천에서 개최됐으나 2019년부터는 북악산 동쪽 줄기에서부터 시작해 창덕궁 후원의 우물샘을 지나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옥류천의 맑은 물줄기를 되살리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명륜당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Q.교수님께서는 국립발레단 단원으로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국립발레단 단원으로서의 삶은 어땠는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제가 이화여대를 졸업하던 1980년 2월에 국립발레단에 입단했습니다. 1982년 12월 말 뉴욕의 발레스쿨에 연수를 가게 돼 그만둘 때까지 약 3년 동안 재직했습니다. 제가 여자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남자 무용수와 함께 추는 ‘Pas de deux’의 경험이 없어 많이 힘들어했던 기억이 납니다. Q.현재 교수님께서 ‘Dance notation’(댄스 표기법), 그리고 소마틱 발레 분야에 관심을 가지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수업인가요. 댄스 표기법은 일명 ‘Labanotion’, 혹은 ‘Kinetography Laban’이라고 합니다. Rudolf Laban이 창안한 움직임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미국을 비롯한 많은 유럽 내 대학 무용학과의 전공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1995년 ‘Labanotation‘ 국제 공인 교사 자격증을 받고 본교 무용학과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소매틱 발레란 소매틱 움직임 교육을 통해 발레 무용수의 수행능력을 증진시키고자 인체의 움직임 원리에 입각한 발레 학습 방안을 연구하고 지도하는 것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무리하게, 인체 원리에 맞지 않게 반복돼 온 연습으로 많은 발레 무용수들이 심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발레 부상을 미리 예방하고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발레 학습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발레 무용수를 양성하고자 합니다. 소매틱 발레에 대해서는 소매틱 발레 홈페이지(http://somaticballet.com)에서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Q.앞으로 연구와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요. 그간 연구했던 서양의 소매틱 학문과 동양의 소매틱 학문을 통합하고자 합니다. ‘통합적 소매틱 무용/움직임’ 연구를 해 동양 대체의학에 기초한 소매틱 움직임 프로그램을 지속해서 개발해 무용인 뿐 아니라 일반인의 건강한 삶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Q.마지막으로, 우리 학교 무용학과 학생들에게 응원과 조언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우리 한국 학생들은 잠재력이 풍부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거나 혹은 믿지 않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주로 미국에서 공부했지만 외국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우리 한국 학생들의 우수한 점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믿고 힘차게 도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들어 학생들을 격려하는 것이 많이 힘듭니다. ‘너무 어려워요!’라는 말을 쉽게 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학생들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데, 학생들 스스로가 쉽게 자신을 포기해버리는 경우를 경험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학생 여러분! 당신은 너무 훌륭하고 아름답습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힘차게 도약하십시오!

  • 상상 이상의 꿈을 가진▼성대생들에게 전하는 마음

    화학과 교수 이동기 교수

    상상 이상의 꿈을 가진성대생들에게 전하는 마음

    상상 이상의 꿈을 가진 성대생들에게 전하는 마음 우리대학 화학과 교수이자 ㈜올릭스 대표이사인 이동기 교수도 30여년전엔 신약 개발을 꿈꾸던 대학생이었다. 대학생 때 우연한 계기로 핵산 화학 수업을 듣게 된 그는 RNA나 DNA를 이용해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는 치료제를 만들면 매우 획기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전까지 약이란 유기화학을 이용한 저분자 화합물이라 생각하여 유기화학을 연구하였던 이동기 교수는 이 생각을 발단으로 생화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지속적인 연구의 결과로 이 교수는 RNA 간섭 분야에서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게 되었고 2010년 실험실에서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올릭스를 설립하였다. ㈜올릭스는 신약 개발 기업으로 신약 개발 기술 중에서도 3세대 신약 기술이라 불리고 있는 핵산 신약 개발을 하고 있다. 최근 ㈜올릭스는 프랑스 안과 전문기업인 테아오픈이노베이션에 안 질환을 치료하는 RNA 치료제 후보물질 4개를 기술 이전하는 계약을 맺으며 제22회 대한민국신약개발상 기술수출부문 기술수출상을 수상할 정도로 국내와 국제 바이오 업계에서 인정받는 기업이다. 하지만 만일 이 교수의 꿈과 목표가 치료제가 없는 분야의 신약 개발이 아니라 제약회사에 들어가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거였다면 하고 반문해본다면 이동기 교수가 꿈을 크게 가지라고 강조하며 말하는 이유가 이해된다. 그의 큰 꿈이 있었기에 지금의 ㈜올릭스가 있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치료제 개발을 위해 이제까지 해온 많은 연구, 실험 중 이동기 대표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시행된 2008년부터 9년간 이어진 글로벌 연구가 단연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는 이 연구에서 RNA 신약개발을 하고자 했다. 이 노력이 훗날 ㈜올릭스에서의 연구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올릭스를 설립하고 힘들었던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2010년에 창업을 했는데 그 당시에는 바이오 분야의 투자 분위기가 좋지 않았고 특히 신약개발에 대한 투자가 매우 저조했습니다. 신약개발은 아무래도 리스크가 크고 오래 걸린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벤처 캐피털이 모험 자본이라고 생각하는 데 모험을 하기 싫다면 그게 어떻게 벤처 캐피털인가란 생각도 들었어요. 결국 4년 6개월 동안 투자를 받지 못했는데 이 시기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간을 잘 버티고 투자를 받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구개발을 할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회사가 굉장히 가파르게 성장했고 우리나라 바이오 업계에서 꽤 알려지며 기술력 부분에서 굉장히 인정받는 회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동기 교수는 특별히 10억이라는 큰 금액을 기부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교수가 교육, 연구, 봉사 이렇게 3가지 활동에 열심히 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교육과 연구는 소홀히 하지 않았지만 봉사 면에서는 다른 교수들에 비해 미흡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받아온 학교의 지원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싶었고, 기부 약정을 결정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동기 교수는 기부금이 이렇게 쓰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 기부금의 절반은 화학과에, 다른 절반은 자연과학캠퍼스에 지정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화학과에 기부한 금액은 학과 발전을 위해서 첨단 강의실을 만들고 새로운 장비를 구입할 수 있는 일에 쓰였으면 좋겠어요. 자연과학캠퍼스로 지정한 기부금은 학교 실험 기자재나 학교 실험의 질을 높이는 일들에 사용되기를 희망합니다. 학생들의 꿈의 크기를 키울 수 있게 기부금을 써주세요.” 그는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항상 하고 싶은 이야기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번째로 그는 말한다. “우리 성균관대학교는 굉장히 우수한 인재들이 와서 공부를 하고 앞으로 진로를 설계합니다. 이 때 꿈을 크게 가졌으면 좋겠어요. 사실은 인류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거창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남들이 듣기에는 너무 꿈이 큰 거 아니냐 싶을 정도로 꿈을 크게 꾸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이 사회는 발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개인이 성취할 수 있는 최대치는 그 사람이 세운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목표를 낮게 설정하면 절대 그 위로 올라가진 못합니다.” 그는 이어 말했다. “자신이 굉장히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파이를 키우는 일을 선택했으면 합니다. 현재 학생들이 주로 선호하는 직업은 정해진 틀에서 자기가 더 잘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직업이에요. 뛰어난 학생들이 주어진 파이를 그저 더 먹을 수 있는 길만 모색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그런 일보다는 자신이 그 분야를 더 발전시키고 국가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꿈을 꾸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동기 교수가 생각하는 기부의 의미란 무엇일까? 이동기 교수는 기부를 '보답'과 '나눔'으로 여긴다. "학교에 기부하는 것은 성균관대학교라는 울타리가 날 돌봐 주는 것에 대해서 내가 그만큼 돌려드리는 의미로 기부하는 것이에요. 여유가 되면 더 많은 다양한 형태의 기부를 하고 싶죠. 공부를 잘하는 것은 머리가 좋게 태어난 것이고 그만큼 달란트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왜 나에게 더 많은 재능을 주셨을까, 그것은 나누라는 뜻이 아닐까, 힘들고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베풀라고 이런 달란트를 주신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작년에 회사 차원에서 수원지역 보육원에 1000만원을 기부했어요. 기부의 금액보다는 일단 시작을 하는 것이 지속적인 기부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했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형태의 지역사회에 대한 기부는 앞으로도 계속 늘려가고 싶어요.” 한국에서 알아주는 바이오 기업의 대표인 이동기 교수는 지속적으로 성균관대학교에 기부를 해오고 있다.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며 여유가 생긴 현재, 그는 앞으로 보여줄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학생들의 학업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기부의 금액보다는 일단 시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말처럼 기부란, 액수보다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닐까?

  • 과학으로 '인간의 감정'을 연구한다

    심리학과 조교수 김민우 조교수

    과학으로 '인간의 감정'을 연구한다

    과학으로 '인간의 감정'을 연구한다 심리학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의 행동과 심리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경험과학의 한 분야이다. 즉 인간과 동물의 행동이나 정신 과정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는 과학 중의 하나가 바로 심리학이다. 심리학과 김민우 교수는 과학으로써 '인간의 감정'을 연구한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 김민우입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Dartmouth College) 심리뇌과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듀크 대학교(Duke University) 심리학과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았습니다. 박사 후 과정을 마친 뒤, 미국 하와이 대학교(University of Hawaii at Manoa) 심리학과에 신경과학 분야 조교수로 임용되어 2020년 우리 학교로 오기 전까지 재직했으며, 정서신경과학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정서신경과학 연구실은 어떤 연구들을 주로 진행하나요? 정서신경과학 연구실에서는 인간의 뇌에서 어떻게 다양한 정서 정보가 통합되고 처리되는지에 관한 연구들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정서 정보의 역동적인 처리 과정에 대한 신경학적 메커니즘을 기능성 자기 공명 영상(fMRI) 기술 위주의 뇌과학적 접근법을 사용해 통합적으로 연구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타인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어낼 때 어떠한 정서 정보가 사용되고 통합되며, 이러한 과정은 뇌에서 어떻게 표상되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연구를 진행합니다. Q. 타인의 정서를 읽는 연구라니 흥미로워요. 진행하셨던 관련 연구 한 가지만 소개해 주세요. 타인의 정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은 개인이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게끔 해주는 중요한 사회 인지 능력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정서를 읽어내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모호함이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호함을 해소하는 것은 다양한 상황 및 맥락 정보를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심리 과정으로, 예를 들어 정서적으로 모호한 표정을 해석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놀람의 정서를 담은 표정이 유용한 예시가 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놀람이 가지는 선천적인 모호성 때문입니다. 놀란 표정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낼 수도(“합격했다!”), 부정적인 의미를 지닐 수도(“지갑이 주머니 안에 없다!”) 있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 맥락 정보에 의해 타인의 놀란 표정에 대한 편도체(amygdala)와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의 뇌 활성화 반응 양상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표정 자체의 지각적 특성이 맥락 정보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수행한 뇌영상 연구에서 기계학습 기법을 사용하여 놀란 표정 자체의 지각적 특성 중 특히 입 주위의 정보가 정서의 유인가(valence)를 결정한다는 점을 밝혔고, 그에 따라 편도체가 긍정적인 놀람보다 부정적인 놀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결과를 관찰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서 뇌에서 정서의 유인가에 대한 정보가 표상되고 처리될 때 특정 시각적 정보가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후속 뇌영상 연구에서는 맥락 정보를 놀란 표정과 함께 제시했습니다. 맥락이 긍정적인 경우에는 부정적인 경우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편도체가 주로 보상 및 쾌락 중추로 알려진 측중경핵(nucleus accumbens)과 정보교환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로써 편도체에서 유인가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고 통합하는지에 대한 한 가지 가능성을 제안했습니다. 향후 연구에서는 사회적 맥락 등 다양한 맥락 정보가 정서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다수의 정서 정보가 어떻게 뇌에서 통합되는지, 이 과정이 개인차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무엇인지를 fMRI를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Q.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연구 분야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인간을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연구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정서신경과학은 인문사회과학적 통찰력과 이공학적 연구 방법론이 만나 시너지를 일으키는 학문 분야입니다. 인간의 감정에 대한 뇌과학적인 이해를 추구하는데 수반하는 내재적인 재미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연구 분야의 매력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의 정서 반응을 최신 뇌영상 기법을 활용해서 두뇌 활동을 들여다보고 수리적, 계산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데서 오는 도전이 매력입니다. 둘째, 인간의 정서 과정과 그 신경과학적 기제를 밝힘으로써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같이 정서의 이상을 보이는 정신질환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Q. 미국심리과학회 (APS)가 선정한 rising star 수상 축하드립니다. 심리학계의 떠오르는 샛별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본인만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PS rising star는 박사학위 후 혁신적인 연구를 통해 심리학의 발전에 공헌해왔으며 향후 미래에도 우수한 성과를 창출해 계속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젊은 심리학자에게 주어지는 영예이다.) 우선 저를 이끌어주신 지도 교수님들과 훌륭한 연구실 선후배 및 동기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실험과 연구를 통해 궁금함을 해소하는 행위 그 자체에 재미를 느껴요. 제가 이런 데서 흥미를 느끼고 동기가 부여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일찍이 연구 활동을 경험해보고 발을 들여놓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학부생이었던 시절부터 뇌영상 연구를 실시하는 연구실에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하면서 이 분야와 관련된 연구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지금까지 꾸준하게 정서와 편도체의 관련성에 대한 실험 및 분석을 하고 논문을 작성해왔습니다. 한 가지 주제를 꾸준히 파고들며 연구를 하게 되니 감사하게도 학계에서 제 연구를 인정하고 곧잘 인용하게 되는 좋은 점도 뒤따라왔습니다. Q. 이번 rising star 수상 외에도 더 많은 수상 경력이 있을 것 같아요. 자랑해 주세요! 신경과학회(Society for Neuroscience)에서 수여하는 Trainee Professional Development Award (2015년 수상), 다트머스 대학교 심리뇌과학과에서 학과 최우수 졸업생에게 수여하는 The William M. Smith Promise Award in the Brain Sciences (2017년 수상), 그리고 다트머스 대학교 전체 박사 학위 취득자 중 학자의 자질이 가장 우수한 졸업생에게 수여하는 Hannah Croasdale Award for Academic Excellence (2017년 수상)를 수상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올해 수상한 APS Rising Star는 이렇게 제 연구 성과가 학계의 기라성 같은 연구자들로부터 인정받는 과정의 연장선에 있는, 의미 있고 영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심리학자 혹은 교수로서의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저는 한국에서 학부 및 석사과정을 마쳤고, 미국 소규모 사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대규모 사립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경험한 뒤, 대규모 주립대학교에서 현직 교수 생활을 하면서 국내외 교육과 연구 환경의 여러 측면을 안팎으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은 지금 우리 학교에서 학부생 및 대학원생을 지도할 때 특히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 명문대 재학생들과 비교해봐도, 성균관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 누구보다 높은 동기 수준과 성실성, 그리고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연구자로서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동시에, 미국에서의 연구 활동을 통해 배운 정서신경과학 분야의 최신 연구 기법과 이론적 기초를 학생들에게 전달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우수한 학생들과 함께 세계적인 연구를 하면서, 국내 정서신경과학 분야의 발전과 후학 양성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인류를 위한 기술로 도움의 손길을 건네다

    의학과 교수 박재현 교수

    인류를 위한 기술로 도움의 손길을 건네다

    인류를 위한 기술로 도움의 손길을 건네다 실내 호흡기 감염병 전파차단을 위한 수직층류 공조 및 살균 시스템 기술 개발 코로나 19 감염병 확산으로 인해 사람들의 신음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감염병으로부터 우리의 일상을 지키고자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다. 우리 학교 역시 코로나 19로 고통받는 이들의 일상이 하루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실내 호흡기 감염병 전파차단을 위한 수직층류 공조 및 살균 시스템이라는 기술을 개발한 의과대학 박재현 교수를 만나보았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의과대학에서 사회의학을 가르치고 있는 박재현 교수입니다. Q. 현재 ‘수직층류 공조 및 살균 시스템’을 개발하고 관련 기술 창업을 준비하고 계신데요, 본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계기는 최근 큰 이슈인 코로나19죠. 이전에 감염병 전문병원의 음압격리병동 연구를 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당시 해외 사례도 직접 보고, 감염병 전파로부터 실내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시설이 필요한지를 보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행이 시작된 이후, 많은 소상공인들이 경제적으로 힘들어하시는 것을 보고 감염병 전문병원의 전파차단 기술을 일상공간에도 적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기술개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현재 진행 중이신 연구 및 창업아이템에 대해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실내에서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경로 중 최근 많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 공기를 통한 전파입니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실내에서 여름과 겨울에 냉난방기의 바람을 타고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사례가 많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연구에서는 옆으로 흐르는 공기가 위험하다고 보고하고 있는데요, 공기가 옆으로 흐르게 되면 감염자의 입으로부터 나온 바이러스가 비말이나 에어로졸(대기 중에 떠있는 작은 입자들)을 통해 옆 사람에게 쉽게 전파될 수 있습니다. 냉난방기로부터 나온 바람은 대류와 와류를 일으키면서 실내 공간 전체에 바이러스를 퍼뜨릴 위험이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 바이러스 전파에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수술실에 적용되고 있는 수직층류(vertical laminar flow)를 통해 감염자로부터 나온 바이러스를 아래쪽으로 내리고, 벽 하부나 바닥에서 배기하여 필터링과 UVC 살균을 통해 바이러스가 제거된 공기를 순환시키는 기술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 수직층류에서 공기가 순환되는 과정 Q. 본 연구를 통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와 기대효과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기저질환이 있는 노인분들은 음식점, 카페 등 사람이 많은 실내 공간에 가시는 것을 두려워하고 계십니다. 특히 마스크를 벗고 음식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 코로나19에 감염될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도 백신 접종률이 낮을 뿐만 아니라 면역력이 낮아서 감염병 확산을 위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한 시설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개발한 기술을 통해 시민분들이 실내에서 안심하고 사람들과 만남을 가질 수 있고, 소상공인은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Q. 성균관대학교 학생들 중, 향후 연구자를 꿈꾸는 학생들도 많은데요, 연구 과정 및 절차에 대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시장과 고객의 필요와 pain point를 잡아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한 필요와 pain point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실제 고객의 니즈를 충족하는 기술입니다. 그 다음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에 대해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가능성, 효과성, 경제성을 따져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선행 연구와 기술에 비해 이 기술이 더 나은 점이 무엇일까를 따져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저는 이번 연구에서 기존 감염병 전파 차단 기술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 한계는 무엇인지에 대한 조사를 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데 초점을 두어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Q. 실제 연구 과정에서 겪는 어려운 점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제가 구상했던 아이디어를 제품 단계로 만드는 것이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공조시스템을 설치하려면 소방법 규정이나 다른 건축 관련 법령에 저촉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아이디어와 이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품 개발단계에서 많은 분들의 조언도 받고 논의도 많이 하면서 디자인도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Q. 실제로 연구를 하다 보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데, 이 때 본인만의 극복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고 조언을 구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할 때가 많거든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를 수 있는데 다양한 생각들을 모두 들어보고 이를 수렴해서 최선의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Q. 보건 의료 관리 및 정책 개발과 관련된 연구를 중점적으로 수행하고 계신데, 현재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연구자로서의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pain point가 무엇인지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연구와 기술 개발 모두 사람들이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연구를 위한 연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연구, 이 기술이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Q.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응원과 조언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코로나로 모든 분들이 힘드시겠지만 우리 주위에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문제를 공감하고 고통을 분담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공유경제와 플랫폼이 중심이 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자신의 지식과 노하우를 남들과 나누는 사람이 이 사회의 중심이 되겠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려는 마음을 가지고 사회와 소통하는 성대생이 되길 바랍니다.

  • 이경성 교수가 제시하는 연극

    연기예술학과 조교수 이경성 조교수

    이경성 교수가 제시하는 연극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에서 연극 연출을 가르치고 있는 이경성이고, 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에서 연극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대학 시절 연극학과에 재학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연극학, 그리고 연극이라는 존재에 이끌리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처음에 영화 감독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진학한 학교는 영화학과와 연극학과로 나눠져 있었는데 영화학과는 연출 전공만 선발하고 연극학과는 연출과 연기 전공을 같이 선발하고 있어서 연기 전공 학생들과 같이 학교를 다니는 것이 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연극학과를 지원하게 됐습니다. 연극을 제 삶의 길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은 대학교 1학년 여름 경험한 프랑스 아비뇽 지역에서 한 달 동안 열리는 ‘아비뇽 연극제’ 덕분이었습니다. 연극제에서 공연들을 보고,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과 같이 연극에 대해 이야기하고 배우와 시민들과 한데 섞여 예술을 향유하는 모습들을 경험하며 연극이라는 것이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교수님은 외국에서 공부한 경험을 가지고 계신데,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와 유학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를 만들어 활동했습니다. 3년 남짓 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여러 실험과 작업을 하다가 제가 지금껏 해온 형식적인 작업들과 시도들이 현대 공연 예술의 어떠한 맥락과 흐름 속에 존재하는지 보다 큰 틀에서 보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영국에 공연예술의 이론과 실제를 같이 공부할 수 있는 과정이 있어서 유학을 가게 됐습니다. 유학 생활 동안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머물렀던 도시, 도시가 가지고 있는 여러 삶의 다양성들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문화적인 행사들을 경험하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가능성들을 조금 더 확장할 수 있던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Q. 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에 대해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크리에이티브 VaQi’는 제가 대학교 4학년이던 2007년 동료들과 같이 창단한 극단입니다. 저희는 기존의 고전 희곡들을 공연하기보다는 동시대의 여러 중요한 테마들과 이슈들을 바탕으로, 그것들을 어떻게 만나고 경험하고 있는지를 찾아서 같이 공모해서 공연예술의 형식으로 관객들을 만나는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거대하게 접하는 사건들이 우리의 일상과 어떻게 연결돼 있고, 그러한 감각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를 극장에서 때로는 극장 밖 거리에서 공연을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 Q. 많은 학생들이 ‘연출’이라는 단어에는 익숙하지만, 정확히 설명하기 쉽지 않습니다. 연출, 특히 공연 연출이란 무엇인지 설명해 주세요. 연출은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생각하면, 하나의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배우, 조명, 음향, 영상, 텍스트 등의 여러 요소가 필요한데, 그 요소들을 하나의 공연으로 조합해서 어떤 방향성으로 갈지 제시하는 것이 연출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Q. 지난 11월 3일부터 9일까지 교수님께서 연출을 맡으신 <보더라인>이 무대에서 선을 보였습니다. 공연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보더라인>은 한국과 독일 양국에 존재하는 분단, 난민 등 ‘경계’라는 키워드를 통해 바라볼 수 있는 여러 역사적, 문화적 현상들을 하나의 연극으로 만든 것입니다. 원래 한국 배우들은 독일에서, 독일 배우들은 한국에서 같이 공연 하기로 했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줌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해서 실시간으로 영상과 무대를 결합한 형식으로 공연을 만들었습니다. Q. 작품 활동에서 교수님이 가장 중점적으로 추구하시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에게는 ‘이 작품을 지금 이 시대에 왜 하는가?’와 같은 작품을 하는 이유가 중요하고 내가 하는 작품이 가지는 질문이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그 질문이 작품을 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내 삶에서 중요한 질문이었을 때 작업을 시작하는 편이고 그것들을 현재 존재하는 여러 매체와 플랫폼 중 연극이라는 하나의 독보적인 형식을 통해 어떻게 관객을 만날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인 것 같습니다. Q. 연극이나 공연 관람에 입문하고 싶어도 진입 장벽을 느끼는 학생들에게 그 문턱을 넘을 방법을 알려준다면 무엇인가요? 공연을 접하는 방식들이 주로 홍보를 통하게 돼 홍보에 많은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는 상업극 위주로 접하게 되는데, 사실 대학로에는 상업극뿐만 아니라 혜화동 윗동네로만 가도 여러 작은 소극장들이 많습니다. 보다 다양한 연극들을 접하면 좋겠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서울문화재단에 지금 상영되는 여러 극단들의 흥미로운 작품들과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연극인 웹진>을 통해 2주에 한 번씩 올라옵니다. <월간 한국연극잡지>나 <계간 연극평론잡지>를 보면 상업극 이외에도 동시대의 중요한 작품들이 많이 소개돼 있습니다. 이러한 관련 매체를 찾아보면 더 다양한 형식의 연극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Q. 교수님의 ‘인생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하나의 인생 작품을 생각하는 편은 아닙니다. 연극으로 인해 한순간에 삶이 바뀌는 것이 아니고 연극이라는 예술을 취미처럼 꾸준히 관람하다 보면 그 세계가 가지는 여러 향기가 자신에게 베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연극을 본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반추해 보고 각자의 맥락에서 자신의 삶에서 보이지 않는, 하지만 중요한 가치들에 질문해 보는 경험을 하는 것이라 ‘인생 작품’을 생각했을 때 딱 떠오르는 단 하나의 작품은 없는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우리 학교 연기예술학과 학생들에게 응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교수의 위치에서 학생들에게 조언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각자 삶의 시기와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겪어온 것을 바탕으로 조언하는 것 자체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언보다는 응원의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한 가지는 자신이 선택한 전공에 대해서 최소한 학교를 다니는 시간 동안 ‘올인’해서 이 분야에 대해 탐구하고 시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 이후의 시간을 고민하느라 4년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전공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저는 눈앞의 4년에 집중하면 그다음 4년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의 논리에 너무 빨리 매몰되지 말고, 예술을 선택한 이상 오히려 효용성의 논의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불필요한 작업을 할까?’와 같은 고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불필요한 일들을 하는 것이 현재의 예술이 이 시대에 저항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한 지점에서 보다 자유로워지면 좋겠습니다. 저는 교수들보다 동료들이 더 좋은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 자신의 뜻을 나누고 키울 수 있는 동료를 만들고 그 인연을 잘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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