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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 김정규 대표
제연 스프링클러로 사람을 살리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스프링클러가 화재 현장에서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기존 스프링클러는 물을 분사해 초기 화재를 진압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연기와 유독가스 제거에는 한계가 있다. 이번 585호 인물포커스는 기존 스프링클러의 단점을 보완하여 연기와 유독가스를 제거하는 제연 스프링클러를 최초 개발한 김정규 대표를 소개하려 한다. 그는 1987년 성균관대학교 유학과에 입학 후 의료기기 회사에 근무하다가 관련 회사를 창업하고, 나아가 소방 회사인 SP&E를 설립한 기업가이다. 5년에 걸친 연구개발 끝에, 기존에 없던 개념의 스프링클러를 완성했고, 소방 회사의 전문성을 높이고자 교정으로 돌아와 올해 2월 성균관대학교에서 방재안전공학협동과정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의료기기 영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가, 어떻게 소방 기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되었을까. 의료기기부터 소방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 영향력을 선사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녕하세요, 생명을 구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김정규 대표입니다. | 대표님의 회사에서 제연 스프링클러를 최초로 개발했다고 들었어요. 성균웹진 독자들에게 해당 제품을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불이 나면 대부분은 연기와 유독가스로 사망합니다. 그런데 기존 스프링클러는 물을 분사하여 화재를 진압하는 기능에 집중되어 있을 뿐, 효과적으로 연기와 유독가스를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제연 스프링클러는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저희 기술은 자연의 원리를 응용한 무동력, 무전원, 자흡식 구조입니다. 유체의 속도가 빨라지면 압력이 낮아지고, 압력은 높은 압력에서 낮은 압력으로 흐르려는 경향이 있어요. 이러한 간단한 과학 원리를 제품에 적용했습니다. 저희 스프링클러 헤드에는 실린더가 있어서 실린더 가운데로 소방수 물이 빠른 속도로 쏟아지면 실린더 안쪽은 소방수 물의 빠른 속도로 인해서 압력이 낮아지게 됩니다. 이때 상대적으로 높은 압력의 실린더 외부의 연기와 유독가스가 실린더 내부로 흡입되어 물과 함께 혼입되며 희석, 용해, 흡착되어 감소하는 기술입니다. 기존 스프링클러는 단순히 물을 분사하는 방법이지만, 저희 제품은 소방수 물 분사와 동시에 별도의 전원이나 추가 장치 없이, 연기와 유독가스를 흡입해 제거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어 연기 유독가스를 훨씬 빠르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물이 나가는 그 순간 연기 제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구조입니다. 원리는 단순했지만, 이 단순한 원리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데는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 제연 스프링클러 헤드 최근 소방법 강화로 스프링클러 설치가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 아파트의 약 20%만이 스프링클러를 갖추고 있어, 화재 취약 시설에선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초고층 건물의 증가와 도심 지하화의 가속, 전기자동차 보급, 노후 건축물의 확대로 인해 화재 위험은 커지고 있어요. 우리 기술은 단순한 화재 진압을 넘어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 원래 의료기기 사업에 종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비교적 다른 분야인 스프링클러 개발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의료기기와 스프링클러가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살린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의료기기 분야에서 일을 시작한 저는 심혈관이 좁아졌을 때 삽입하는 스텐트를 제조하는 미국 회사에 다니다가 의료기기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는데, 그때 코로나가 터졌어요. 2주 동안 강제적으로 집에만 있으면서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안 되겠다 싶어서 코로나 관련 제품을 판매해 보려고 했습니다. 무작정 마스크 공장이나 진단 키트 공장에 찾아다니며, 30만 장의 마스크를 미국으로 수출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중 한 선배님이 실내 공기 살균 장치를 개발한 분이 총판대리점을 찾고 있다며 관심이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병원에 실내 공기 살균 장치를 공급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해 당연히 관심이 있다고 했어요. 그렇게 개발자를 만났는데, 실내 공기 살균 장치의 원천 기술이 스프링클러 기술과 같다며 예상치 못한 스프링클러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평생 의료기기만 해오던 저는 예의상 5분 정도만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지만, 기술이 워낙 흥미로워서 3시간이 넘게 해당 기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정도로 해당 아이템이 너무 매력적이고 직관적으로 다가왔어요. 특허 양도를 요청하는 것이 결례라고 생각하면서도, 특허 양도가 가능한지 여쭤봤고 그렇게 해당 기술을 양도받게 되었습니다. 스프링클러 기술을 가져온 게 2020년 7월쯤이었는데, 의료기기 회사가 ‘왜 소방 사업을 하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이에 2021년 3월에 스프링클러 사업을 별도로 운영하기 위해 SP&E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 세계 최고 소방대학인 우스터 폴리테크닉대학(WPI, 이하 우스터대학)과 업무 협약을 체결할 정도로 해당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성과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동탄 연구소에서 첫 실험을 성공한 2020년 9월 추석 연휴 동안 5년, 10년의 중장기 사업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때 저의 최종 목표는 글로벌 소방 클러스터 단지를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제품을 모아놓은 단지가 아니라, 제품 연구개발, AI 등 융복합 기술을 통한 다양한 제품 양산, 국제 연구소, 글로벌 인증 센터, 교육기관, 정부 지원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클러스터를 구상했습니다. 이 계획을 부사장에게 공유하면서 소방 분야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어요. 부사장은 우스터대학을 포함한 여러 대학을 추천했지만, 제가 택한 우스터대학은 너무 최상위권 대학이라 회신이 안 올 것 같으니 차순위 대학을 컨택해 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우리 기술이 최고라고 확신했고, 이에 “뉴욕 출장길에 당신 대학에 방문해서 연기 유독가스 제거 스프링클러 헤드로 논의를 해봤으면 하는데 어떠냐”라고 무작정 우스터대학에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틀도 지나지 않아 학장님으로부터 만나자는 답장을 직접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코로나가 성행하던 시기라 바로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메일로 비밀 유지 협약(NDA)과 MOU를 체결했고, 몇 개월 후 우스터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성과의 비결은 역시 기술력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학장님이 저희 기술을 보자마자 굉장히 혁신적이고 글로벌 소방 시장을 선도할 기술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제가 국내 관공서나 건설사를 방문할 때 도움이 되도록 저희 기술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내용이 담긴 추천서를 보내주시기도 했어요. 이후 머니투데이 키 플랫폼 메인 행사장에서 발표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발표장에 학장님을 초대하여 축사를 듣기도 했습니다. ▲ (왼쪽부터) 우스터 폴리테크닉대학 박사후 연구원, 우스터 폴리테크닉대학 학장, 김정규 대표 ▲ 머니투데이 글로벌 콘퍼런스 ‘2023 키 플랫폼’에서 강연 중인 김정규 대표 | 성균관대학교 방재안전공학협동과정에 진학해 올해 2월 박사 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실제 제품 개발에 도움을 준 수업 내용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방재안전공학협동과정은 특정 소방 기술만을 다루는 커리큘럼이라기보다, 화재를 포함한 재난을 바라보는 공학적 사고 체계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제품 설계 하나를 만들어주는 수업이기보다는, 제가 개발한 기술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언어와 방법을 갖추게 해준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유체역학(CFD)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연구원들의 인프라와 지원은 국가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연기 거동, 유동 변화 등을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고, 기술의 원리를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공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윤홍식 지도교수님의 소개로 만난 방재시험연구원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실증 기반의 연구 과정을 구축할 수 있었고, 이는 기술의 신뢰성과 사업성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지도 교수님께서 건설사, 설계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직접 논의할 기회를 마련해 주신 점이 매우 의미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실제 설계, 적용이 가능한 수준까지 기술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방재안전공학협동과정은 단순한 학위 취득을 넘어, 저희 기술이 공학적 검증을 통해 소방산업 적용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성균관대 윤홍식 지도교수의 연구실 첫 방문 소방 관련 사업의 레퍼런스를 만들고자 뛰어든 공부였지만, 회사 일과 병행하려다 보니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박사과정을 거치며,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던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 올해 2월 박사 졸업식 |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일인 만큼 제품 개발 과정에서도 심혈을 기울이셨을 것 같아요. 제품 개발 과정에서 마주한 난관과 이를 해결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우리 회사의 기술은 글로벌 원천 기술입니다. 원천 기술이란 전 세계적으로 경쟁 상대가 없는 독보적인 기술을 의미하며, 이는 큰 자부심이기도 해요. 하지만, 모든 연구개발이 저희가 처음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기에 전 세계 어디에도 제품의 표준이나 기준이 없었어요. 그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 특허 기술을 가지고 제품을 개발해서 일반 시장에 상용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신제품인 만큼 기준이 없어 모든 과정을 오로지 저희가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자금, 인력, 네트워킹, 과학적 검증 등 모든 부분이 난관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대표이기에 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습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힘들다는 표현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겨내고 나면 힘듦이라는 건 없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런 셀 수도 없는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며 계속해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게 참 뿌듯합니다. ▲ 각종 대회에서의 수상 모습 | 그러한 많은 난관을 딛고 만들어진 스프링클러가 경주 성동시장, 양양 종합 여객터미널 등 다양한 장소에 설치되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솔직히 말해 그때 운전하며 많이 울었습니다. 첫 설치 장소가 경주 성동시장이었거든요. 현장에 있던 직원이 첫 번째 헤드 설치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주었는데, 지금도 이 사진만 보면 그간의 개발 과정이 떠올라 울컥합니다. 저는 신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기쁨은 찰나, 고난은 마라톤 같다”라고 표현합니다. 마라톤 경기를 보면 죽을 듯이 달리다가 잠깐 급수대를 지나며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달려 나가게 되는데, 그 짧은 순간의 목축임이 이후 완주까지 큰 힘이 되는 것처럼요. 저 역시 그와 같은 순간적인 기쁨을 원동력 삼아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왔고, 결국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스프링클러 첫 설치 장면 | 학부와 박사 과정을 모두 성균관대학교에서 마치신 만큼 학교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 좌우명이 '후회하지 말자'라는 것입니다. 후회란 그 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뜻이니까요. 후회가 많을수록 지난 시간을 허비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그 좌우명대로 살아왔기에 남들보다 수배는 부지런히 움직여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좌우명의 뿌리가 사실 제 전공인 유학에 있었습니다. 중용(中庸) 첫 장에 나오는 신독(愼獨) 즉, 누가 보지 않는 혼자만의 순간에도 자신을 삼간다는 가르침입니다. 후회 없는 삶이란 결국 남이 볼 때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학창 시절엔 그 의미를 깊이 새기지 못했지만, 사업을 하면서 어떤 경영서보다 그 한 단어가 먼저 떠오를 때가 많았습니다. 나태해 지려 할 때, 현실과 타협하려 할 때,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때마다 신독이 저를 붙들어 줬습니다. 그럼에도 학창 시절 학업만큼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정작 그 좋은 가르침을 배우던 시절엔 공부보다 야구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으니까요. 입학과 동시에 가입한 킹고야구반이 제 대학 시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당시엔 서클이라 불렸는데, 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이 절정일 때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운동권이었죠. 선후배 간 기강도 엄격하고 분위기도 살벌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모두 소중한 추억입니다. 야구에 진심으로 미친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고, 지금도 매년 두 차례 OB·YB 전으로 세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창립 50주년이라 하니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 킹고 야구반의 과거와 현재 학생 시절 공부를 소홀히 하니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그 격차가 크게 느껴졌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는 사회에 나와서 학장 시절 부족했던 영어 실력을 따라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원하던 미국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고, 남들보다 조금 늦게 공부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지금 학교에 다니는 후배들에게 오늘 20대의 시간이 뼈저리게 소중하기에 알차게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한편, 학업적인 아쉬움과는 별개로, 성균관대학교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군 전역 후 복학하여 지금은 유학대학 학장이 된 절친한 친구 김동민 교수와 점심을 마치고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가로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요. 점심시간이라 수많은 학생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분주히 오가는 그 순간, 갑자기 온 세상이 정지되더니 오직 한 학생만이 움직이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학생이 계단을 올라 제 앞으로 다가오던 그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또렷합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하고 제 친구에게 밝게 인사를 건네던 저희 과 후배였던 그 학생은, 이후 연애 시절까지 포함해 어느덧 32년을 함께한, 제 삶에서 가장 현명하고 사랑스러운 사람, 바로 제 아내가 되었습니다. 공부를 딱히 열심히 했던 것도, 내세울 만한 활동이 있었던 것도 아닌 학창 시절이었지만, 그 벤치에서의 한순간만으로도 제 대학 생활은 충분히 빛나고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같았던 그 만남이 제 인생이 되었네요. ▲ 김정규 대표와 아내의 과거, 현재 모습 | 제품의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실 만큼 큰 열정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처럼 대표님께서 계속해서 도전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저는 그 원동력이 ‘의지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더 이상 할 수 없겠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다시 나아갈 기회가 생깁니다. 누군가가 투자해 주거나, 발표도 하고 제품이 알려져서 인지도가 생기는 순간들처럼요. 그럴 때마다 마치 ‘야! 이 일은 네가 해야 해’라고 하늘에서 점지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어떤 일이 생기면 항상 해결 방법부터 찾으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부정적으로 보이는 상황이라도, 그것을 또 다른 기회로 받아들이면 자신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러한 성향이 제가 멈추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신입사원 중 임원까지 올라가는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초기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노력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느 순간 타협하고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인생에서 마주하는 모든 계단을 하나하나 끝까지 올라가 보려는 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야 본인이 원하는 곳까지 다다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연구실과 방재시험연구원에서 연구와 실화재 실험 중인 연구원 | 대표님의 꿈이 궁금합니다. 현재 준비 중인 또 다른 사업 아이템이나 분야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10년 전쯤 영업 관련 서적을 6권 정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간접 경험에 머무르다 보니 생생하게 와닿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이러한 아쉬움을 해소하고자 현장에서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써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틈나는 대로 집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금도 계속 쓰고 있고요, 아마 훗날 사업적 성과까지 담은 책 한 권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짐작합니다. 또 다른 꿈은 사업적으로 성공을 이루고 그 수익을 의미 있는 곳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특히, 조손 가정, 자립 준비 청년, 소방 유가족을 위해 재단도 설립하고 싶어요. 감명 깊게 본 드라마 제목을 빌려서 재단 이름도 ‘나의 아저씨’로 정했습니다. 다만, 사업적인 꿈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꿈을 물어보신 거라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항상 일에 집중하며 일에 대한 꿈은 많은데, 제 개인적 꿈에 대해서는 답변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동안 일이 우선이어서 그랬지 싶습니다. 앞으로 제 꿈을 찾아보는 시간도 가지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또 다른 도전의 기로에 서 있는 성균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후회 없이 사세요. 매 순간 자신에게 솔직하게 최선을 다했다면, 그 결과가 어떻든 후회할 이유가 없습니다. 기억에 남을 만큼 최선을 다해 보세요. 세네카는 "우리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31년 비즈니스 현장에서 몸으로 배웠습니다. 불편한 일, 귀찮은 일, 재미없는 일을 이겨낼 때 결국 성과가 됩니다. 사람들이 나중에 가장 크게 후회하는 건 실패한 도전이 아니라,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것들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오늘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틀려도 되고, 돌아와도 됩니다. 다만 한 발을 내딛는 것만큼은 미루지 마세요. 넘어지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일어서기를 포기하는 것이 실패입니다. 자신의 재능과 가능성에 진심을 쏟아주세요. 남이 알아주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이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중용》의 말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숨겨진 곳일수록 더 잘 드러나고, 작은 것일수록 더 분명히 나타난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 아무도 보지 않는 그 순간이, 결국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혼자인 그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결국 멀리 갑니다. 머뭇거리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릅니다. 사랑도, 공부도, 운동도 무엇이든 지금 바로 시작하세요.
- No. 102
- 2026-04-20
-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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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공학부 김종욱 교수, 의학과 남주현 교수
교육과 연구의 여정 위에서, 다시 성균으로 - 화학공학부 김종욱 교수, 의학과 남주현 교수
성균관대학교는 우수한 교육-연구(Research and Education, R&E) 체계를 바탕으로 학문적 연속성과 성장 가능성을 이어 나가고 있다. <성균웹진> 585호에서는 성균관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모두 마치고 올해 3월, 우리 학교로 돌아온 신임 교원 김종욱, 남주현 교수를 인터뷰했다. 이들의 연구 여정을 통해 예비 대학원생, 교원 임용을 희망하는 대학원생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지속적 학문 성장 사례와 조언을 제시한다. ■ 공과대학 화학공학부 김종욱 교수 - 2015년 화학공학부 학사 졸업 - 2022년 화학공학과 박사 졸업 - 2026년 화학공학부 조교수 부임 | 교수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올해 3월부터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종욱입니다. 반갑습니다. ‘삼성학술정보관’과 ‘기숙사 신관’이 처음 문을 연 2009년, 성균관대학교 공학계열에 입학해 화학공학부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모두 마치고 2022년 2월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약 3년 6개월간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반도체 소재 및 공정을 활용한 바이오 광전자 소자 개발과 시스템 확장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이렇게 성균관대학교에서 오랜 시간 배우고 공부한 후에 다시 모교로 돌아와 교수로서 후배 학생들과 함께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뜻깊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앞으로 학생들과 함께 화학공학을 기반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소재, 소자를 개발하여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 성균관대에서의 수학 경험이 현재의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현재 제가 수행하고 있는 연구는 다양한 학문이 융합된 ‘공학 연구’입니다.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분야라도 깊이 들여다보고 연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새로운 연구 방향이 열릴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는 제가 화학공학부에서 소재, 반응, 열역학, 열 및 물질전달, 반도체 및 화학공정 등 다양한 학문을 접하며 융합적 사고를 기를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성균관대의 학생 연구활동 지원사업(장학금, 펠로우십, 해외 방문연구 등), 우수한 연구장비 인프라, 높은 접근성을 바탕으로 한 공동연구 환경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해 실제 연구로 확장하고 직접 검증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또한 예전 학부 수업에서 공학과 과학의 의미, 그리고 공학도로서 어떠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글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는 과제가 있었는데요. 지금 돌아보면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엔지니어’로서의 마인드를 길러주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 2015년 일리노이주립대학교 로저스 교수 연구실 방문학생 당시 김종욱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 | 학부에서부터 박사 후 연구활동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통해 모교의 교수로 임용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화학공학부 김태일 교수님 연구실에서 학부연구생으로 처음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학위 과정 동안에는 미국 일리노이주립 대학교와 노스웨스턴 대학교, 중국 HUST, 독일 BASF 등 해외 대학과 기업을 방문해 연구 수행, 컨퍼런스 참석, 국제 인턴십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어요. 이러한 경험들은 제가 학문과 연구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아카데미아(Academia)의 길을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든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또한 한국연구재단에서 주관하는 ‘글로벌 박사 펠로우십’ 과제를 5년간 수행하면서 다양한 연구자들과 교류할 기회를 가졌고, 이러한 경험 역시 박사후 연구원을 지원하는 큰 동기와 자극이 되었습니다. 이후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연구를 이어가던 중 모교의 임용 공고를 접했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 2018년 석박통합과정 당시 김태일 교수의 다기능 유연소자 연구실 | 교수님의 연구 분야와 대표논문, 앞으로의 연구 계획이 궁금합니다. 저는 반도체 공정을 기반으로 기능성 소재와 전자소자를 개발하고, 이를 에너지 변환 장치와 바이오전자소자 등에 활용하는 연구를 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연구 성과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마이크로·나노 계층구조체 제작이 가능한 리소그래피 기술에 관한 연구로, Adv. Funct. Mater. (2017)에 게재되었습니다. 제 첫 연구 논문이기도 한 이 연구는 이후 반도체 공정 기술과의 통합을 통해 다양한 후속 연구 성과로 이어지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심혈관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멀티센싱 소자에 관한 연구로, Nat. Biomed. Eng. (2023)에 게재되었습니다. 밀리미터 스케일의 소형화된 실리콘 박막 센서를 개발하고, 이를 활용하여 혈류, 혈압, 온도를 동시에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실리콘 마이크로/나노 박막을 다루는 반도체 공정에 대한 이해를 더욱 심화할 수 있었으며, 이는 포토트랜지스터, 다이오드 등 다양한 실리콘 반도체 소자 개발에 필요한 기반 기술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저희 연구실은 소재-공정-소자 개발 및 시스템 확장연구를 통해 에너지, 바이오, 환경 등 폭넓은 응용을 지향하고자 합니다. ▲ 박사후 연구원 시절 성균관대학교 다기능 유연소자 연구실 | 대학원생들이 교육적 지식을 연구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 역량을 기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실험 결과를 구체적으로 데이터화하고 이를 꾸준히 정리해 두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사진을 남기고, 실험 내용을 기록하고, PPT 등의 형태로 정리, 저장해두면 훗날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데이터의 축적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연구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시간을 절약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결과를 ‘이전 진행 내용–현재 결과–향후 계획’의 흐름으로 정리하면 교수님이나 연구실 동료들과 공유가 훨씬 수월해지고, 다음 단계에 대한 논의도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 성균관대학교 선배이자 교수님으로서 학생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대학원 생활 Tip이 있다면요? 학기 시작 직전에는 한 학기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들, 예를 들어 전화 영어 수강, 국제학회 참석, 논문 제출 등과 함께 일주일 정도의 휴가 계획도 미리 세웠던 것 같습니다. 실험실에 있다 보면 하루가 정말 짧게 느껴지고, 한 달, 두 달이 훌쩍 지나가곤 합니다. 따라서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미리 세워둔 휴가 계획을 하나의 동기부여로 삼아 연구 생활의 리듬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내 세미나나 학회에 기회가 있다면 자주 참석해 다양한 연구 결과를 보고 듣고 참고하면서 이를 자신의 연구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시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노스웨스턴대학교 박사후 연구원 당시 Bioelectronics lab module 수업 ■ 의과대학 의학과 남주현 교수 - 1997년 유전공학과 입학 - 2006년 의과대학 생리학전공 박사학위 취득 - 2026년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교수 부임 | 교수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에 재직 중인 남주현입니다. 저는 1997년 성균관대학교 유전공학과에 입학하여 학부를 마친 뒤, 같은 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병역의무를 마쳤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2년간 연구조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그 후 동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16년간(2010~2025)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를 이어갔고, 2022년부터 2023년까지는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하버드 의과대학 신경과에서 Research Associate로 활동했습니다. 올해 3월부터는 모교인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에 부임해 이온통로 표적치료 연구실(Ion Channel Therapeutics Laboratory)을 이끌고 있습니다. 제 연구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우리 몸의 세포막에 있는 이온통로라는 단백질을 표적으로, 아토피·알레르기비염과 같은 알레르기 질환, 만성 통증·가려움증을 치료할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병이 생기는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고 치료 후보물질을 발굴한 뒤, 동물실험을 거쳐 실제 임상시험 승인(IND)을 받기까지의 전 과정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 성균관대에서의 수학 경험이 현재의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성균관대에서의 시간은 크게 두 단계로 제 연구의 토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먼저 유전공학과 학부 과정은 연구자로서의 뿌리가 된 시간이었습니다. 분자생물학, 생화학, 세포생물학 등 생명과학의 핵심 기초를 다지면서, 생명 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바라보는 눈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대학원 과정은 그 시야를 한층 넓혀준 시간이었습니다. 생리학은 세포 하나의 작동 원리를 넘어, 우리 몸 전체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움직이는지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덕분에 세포 수준의 미시적 관점과 인체 시스템 전체를 아우르는 거시적 관점을 함께 갖출 수 있었고, 지금도 연구할 때 가장 큰 강점이 되고 있습니다. ▲ 2002년 대학원 시절 또 한 가지 결정적인 경험은, 당시 지도 교수님께서 임상 교수님들과 공동연구를 활발히 진행하셨는데, 그 과정에서였습니다. 기초 연구자들은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면 흔히 '이 물질이 얼마나 강하게 타깃에 작용하는가(potency)'를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그런데 실제로 환자에게 쓰일 약이 되려면, 그보다 먼저 '부작용은 없는가(독성, toxicity)'와 '실제 치료 효과가 있는가(효능, efficacy)'를 따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경험은 기초 연구와 실제 신약개발 사이의 간극을 일찍부터 인식하게 해 주었고, 이후 제가 임상시험 승인까지 아우르는 전주기 연구를 지향하게 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모교로 돌아온 지금, 그 시절의 경험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 2008년, 박사후연구원 시절 이온통로연구회 포스터 발표 | 학부에서부터 박사 후 연구활동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통해 모교의 교수로 임용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커리어 경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기초에서 치료로(From Basic Science to Therapy)’입니다. 성균관대 유전공학과를 졸업한 후, 단과대학을 옮겨 의과대학 생리학교실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이온통로 전기생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온통로란 세포막에 존재하는 단백질로, 세포 안팎의 이온 흐름을 조절하여 신경 신호 전달, 근육 수축, 면역 반응 등 우리 몸 전반에 걸쳐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흔히 심장이나 뇌의 전기적 활동을 조절하는 단백질로만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훨씬 광범위하게 작용합니다. 면역세포에서는 칼슘 채널을 통해 염증 반응을 조절하고, 췌장에서는 인슐린 분비를 제어하며, 종양세포의 증식과 전이에도 깊이 관여합니다. 이처럼 비슷한 일을 하는 작은 단백질들이 신경계 질환은 물론 당뇨병 같은 내분비 질환, 알레르기, 만성 통증 등 수많은 질환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저를 이 분야로 이끌었습니다. 박사학위 취득 후 서울대·연세대 의과대학을 거쳐 동국대학교 의과대학에 임용되었고, 16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이온통로를 표적으로 하는 신약 개발 연구에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ORAI1, ANO1 등 이온통로를 표적으로 하는 아토피피부염·알레르기비염 치료 후보물질에 대해 IND(임상시험계획) 승인을 다수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 2010년, 연세대학교 연구조교수 시절 연구를 이어가면서 한 가지 벽에 부딪혔습니다. 만성 통증이나 가려움증처럼 신경계가 깊이 관여하는 난치성 질환은, 기존 약물로는 근본적인 해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때 눈을 돌린 것이 유전자치료였습니다. 문제가 되는 신경의 유전자 발현 자체를 조절할 수 있다면, 약물로는 닿지 못했던 영역까지 치료 가능성을 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수로 재직 중이던 2022년, 연구휴직을 신청하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하버드 의과대학 MGH 신경과에서 Research Associate로 2년간 근무하며, AAV(아데노 연관 바이러스, Adeno-Associated Virus)를 이용해 이온통로를 타깃으로 하는 유전자치료 개발 연구를 배우고, 새로운 연구 기반을 닦았습니다. 16년간 교수로 지내다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다시 배우는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연구자로서 다시 한번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뜻밖의 수확도 있었습니다. 오랜 교수 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학생 시절의 막막함과 어려움을 잊게 되는데요. 다시 배우는 자리로 돌아가면서 박사 및 박사후 과정생들이 겪는 고충을 몸소 느꼈고, 학생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귀국 후, 모교인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에 부임했습니다. 학부생 시절 처음 배움을 시작했던 바로 이곳에서, 이제는 다음 세대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를 이어간다는 사실이 매우 뜻깊습니다. | 교수님의 연구 분야와 대표논문, 앞으로의 연구 계획이 궁금합니다. 저희 연구실의 핵심 목표는 한마디로 ‘이온통로 타깃 신약 개발을 위한 전임상 플랫폼 구축’입니다. 알레르기 질환, 만성 통증, 피부노화, 종양까지, 얼핏 서로 달라 보이는 이 질환들의 공통점은 모두 이온통로의 기능 이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 연구실은 이 연결고리를 파고들어, 기초 연구에서 출발해 실제 임상시험 승인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신약 하나가 탄생하기까지는 여러 단계의 연구가 순서대로 이뤄져야 하는데요. 먼저 질병이 생기는 원인을 분자 수준에서 밝히는 기전 연구를 수행하고, 그다음 어떤 이온통로가 치료 표적이 될 수 있는지 타깃을 발굴해야 합니다. 표적이 정해지면 약물이 단백질의 어느 부위에 결합하는지 약물 결합부위를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후보물질을 빠르게 추려냅니다. 마지막으로 최종 선발된 후보물질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작용기전(MOA)을 분석하는 과정을 진행하게 되는데, 저희 연구실은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고 있습니다. 대표 성과로는 분자동역학을 활용한 이온통로 약물 결합부위 규명(PNAS, 2024), Cannabidiol의 통증 조절 기전 분석(Pain, 2024), 난청 관련 KCNQ4 유전자 변이 분석(Experimental & Molecular Medicine, 2023), 암세포의 칼륨 채널 의존성을 활용한 선택적 항암 기전 연구(Cancer Research, 2026)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 이러한 기초연구와 함께 동국대 재직 당시에는 임상 교수님과 공동으로 이온통로질환연구소를 설립, 실제 신약 개발로 이어지는 중개연구도 활발히 진행했습니다. 의과대학, 약학대학, 제약회사가 함께 협력한 이 연구들은 현재까지 임상 2상 IND 2건, 임상 1상 IND 1건 승인이라는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아토피피부염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원료 제조부터 비임상시험까지 전임상의 모든 단계를 직접 경험한 박사과정 학생이 졸업 후 비임상시험 전문 기업 'CiPA Korea'를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연구실 경험이 창업으로 이어진 사례로서 연구가 사회에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뜻깊은 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가장 공을 들이고 싶은 분야는 AAV 유전자치료를 이용한 만성 통증·가려움증 치료입니다. 만성 통증과 가려움증은 감각신경이 관여하는 복잡한 증상입니다. 기존 약물은 전신에 작용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크고, 오피오이드 같은 강한 진통제는 중독 위험까지 있습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MGH에서 새로운 접근법을 배웠는데, 바로 통증 부위에 AAV 벡터를 직접 주사해 통증을 전달하는 감각신경(통각수용체)에만 특정 이온통로 유전자를 선택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이온통로가 발현되면 신경세포의 흥분성이 낮아지고, 그 결과 통증 신호가 억제됩니다. 전신 부작용 없이 통증 신경만 정밀하게 조절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현재 이 유전자치료 플랫폼을 통증뿐만 아니라 난치성 가려움증까지 확장하는 연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하나의 질환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AAV 벡터의 프로모터(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스위치)만 바꾸면 다양한 감각신경 질환에 적용할 수 있는 모듈형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마침,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에는 정밀의학교실이 있어 유전자치료 및 유전자편집 전문가들과 협력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갖춰져 있어요. 모교로 돌아온 것이 연구자로서도 더없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느낍니다. ▲ 하버드 의과대학 MGH 신경과 근무 당시 | 대학원생들이 교육적 지식을 연구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 역량을 기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학생들에게 늘 이렇게 말합니다. “과학자이기 이전에, 훌륭한 스토리텔러가 되어라.” 논문을 쓰는 일은 본질적으로 한 권의 책을 집필하는 것과 닮아 있습니다. 좋은 작가가 되려면 먼저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뛰어난 작가들이 세상을 어떻게 문장으로 옮겼는지를 체득해야, 내 안에서도 좋은 문장이 나올 토양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연구도 자신의 분야에서 대가들의 논문을 꾸준히 읽다 보면, 그 분야의 핵심 난제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실험적으로 풀어가는지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됩니다. 이것이 비판적 사고와 연구 설계 능력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읽기만 해서는 좋은 작가가 되지 못합니다. 직접 써봐야 합니다. 연구도 마찬가지로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설계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비로소 연구자의 감각이 만들어집니다. 여기에 학회와 세미나에서 다른 분야 연구자들과 교류하는 경험이 더해지면 ‘이 연구자는 같은 문제를 이렇게도 바라보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그 신선한 시각 하나가 상투적인 틀을 깨는 계기가 됩니다. 대학원은 바로 그 토양을 만드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원 과정을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하기 위한 단단한 채비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 성균관대학교 선배이자 교수님으로서 학생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대학원 생활 Tip이 있다면요? 1. 자기관리 Tip 제가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Resilience, 즉 회복탄력성입니다. 연구라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험합니다. 공들인 실험이 재현되지 않고, 자신 있게 제출한 논문이 거절당하고, 어렵게 신청한 연구비가 탈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죠. 논문이나 연구비 심사 통과율은 높이 잡아도 10~20% 안팎입니다. 즉, 열 번 도전하면 여덟아홉 번은 거절당한다는 뜻이지요. 이러한 냉혹한 현실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능력이 Resilience입니다. 그래서 세 가지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첫째, 실패를 재정의하세요. 실패한 실험 데이터 안에도 반드시 배울 것이 있고, 거절당한 논문의 리뷰어 코멘트 안에도 연구를 더 단단하게 만들 재료가 있습니다. 실패는 무능함의 증거가 아니라, 연구 과정의 일부입니다. 둘째,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멘토, 동료, 가족의 존재가 연구자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합니다. 막혔을 때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중요한 능력입니다. 마지막으로, 연구 밖의 나를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학위 기간 더 많은 성과를 내려는 마음에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특히 유학생들은 빨리 학위를 마치고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까지 더해져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하더군요. 하지만, 취미든, 운동이든,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이든, 연구 외의 삶이 탄탄할수록 연구가 잘 안될 때 심적으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결국 가장 멀리 갑니다. 2. 랩 동료 및 지도교수와의 소통 Tip “연구 실력은 시간이 지나면 늘지만, 관계는 한번 틀어지면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입니다. 연구실은 실력만큼 관계가 중요한 곳이거든요. 대학원 연구실은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공간입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그 어떤 곳보다 중요합니다. 미국에서 연구할 당시 연구기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던 개념이 있었습니다. 바로 Microaggression입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일상에서 반복되는 크고 작은 차별적 언행을 뜻하는데, 연구실에서도 생각보다 훨씬 자주 일어납니다. 특정 배경의 학생에게 암묵적으로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거나, “넌 왜 대학원생이면서 이것도 모르니?”라는 무심한 핀잔, 특정 학교 출신이나 국적·성별에 대한 편견, 공동연구의 공이 특정인에게만 돌아가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지속되면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 아주 작은 상처가 생기고, 긴 대학원 생활 동안 조금씩 쌓이면서 결국 깊은 상처로 남게 됩니다. 그리고 연구실이라는 작은 공동체의 결속력과 화합을 무너뜨리는 가장 조용하고 위험한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몇 가지를 늘 마음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동료가 힘들어할 때, “나도 그때 힘들었어”보다 “내가 다 알 순 없지만, 네 곁에 있겠다”는 말이 훨씬 큰 힘이 됩니다. 불편함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 그 말을 방어적으로 받지 않는 문화가 건강한 연구실의 토대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소외되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침묵은 곧 동조입니다. “저도 그 의견 좋다고 생각해요”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큰 버팀목이 될 수 있습니다. 지도교수님과의 관계에서도 팁을 하나 드리자면, 랩미팅에 들어갈 때는 '지금 상황 - 막히는 지점 - 내가 생각한 해결책'을 미리 정리해 가세요. 잘된 실험뿐 아니라 실패한 실험도 솔직하게 가져가는 것, 그것이 신뢰의 시작입니다.
- No. 101
- 2026-04-20
-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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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전문대학원 김경진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세상을 설계하며,
법학전문대학원 김경진 교수기술은 세상을 바꾸고, 법은 그 변화를 조율한다. 양극단에 서 있는 듯 보이면서도 그 어떤 분야보다 밀접하게 관계를 맺는 이 두 학문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끌어 왔다. 인물포커스 584호에서는 이 두 분야를 모두 경험해 온 김경진 교수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공학 분야를 전공한 후 삼성전자에서 변리사로 일하다, 우리 대학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여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김경진 교수는 이제 학생이 아닌 교수로 올해 3월, 성균관대학교를 다시 찾게 되었다. 다채로운 도전을 이어 가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온 김경진 교수의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 보자. |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특허법 교수로 부임하게 된 김경진 교수입니다. 저는 우리 대학 법학전문대학원을 1기로 졸업한 후, 법무법인(유) 율촌과 법무법인(유) 광장 IP(지식재산권)팀에서 근무했고 로펌에서 특허소송 및 심판, 영업비밀 침해 소송, IP 전략 업무 등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주요 화학사를 위한 특허침해소송 사건을 다수 대리하였습니다. * IP(Intellectual Property): 인간의 창작으로 발생한 무형의 자산 및 이를 보호하는 지식재산권 | 학부와 석사 학위 모두 이공계 분야의 전공에서 취득하셨어요. 당시에는 어떤 학생이셨나요? 고등학교까지만 해도 과학에 관심이 많은 과학 소녀여서, 대학에 진학할 때 자연스럽게 이공계 분야의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로펌에서도 특허 관련 업무를 수행하였고, 지금도 과학과 공학에 대한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어렸을 때 저의 꿈은 과학자였는데, 사실 변호사가 되고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수가 되어 저 자신도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오랫동안 삼성전자에서 변리사로 근무하시다가 우리 대학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셨어요.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제가 법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대학교 때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고, 변리사로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법학을 공부해 보니 논리적인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 생활에 법률 지식을 적용해 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또한,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공부했던 민법, 특허법에 대한 관심이 변리사 업무를 통해 법학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던 것 같습니다. 변호사로서 기술 분쟁의 최전선에서 특허권 침해소송을 대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9년에 법학전문대학원이 처음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법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 변리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두고 새로운 길을 선택하시는 데 있어 두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원래 새로운 일을 시도하거나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어떠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되었을 때, 비록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실제로 그 일을 해 보아야 후회가 없다고 믿는 편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길을 선택할 당시에도 큰 두려움과 불안감은 없었습니다. 다만 당시 법학적성시험을 준비해야 했고, 법학전문대학원의 경쟁률도 치열했기 때문에 합격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기억은 납니다. | 제1회 변호사시험 합격자는 한국 로스쿨 제도의 첫 세대이기도 한데요. 그 상징적인 시험을 치르고 합격하기까지의 감회는 어떠셨나요? 변호사시험이 처음 진행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시험 문제나 그 결과를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 어려웠습니다. 또한, 시험 자체가 일주일 동안 진행되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만, 제1회 시험이었기에 합격률 자체는 높았던 편이라, 비교적 수월하게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요즈음에는 변호사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 더 높아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 시카고에 소재한 Northwestern University LL.M. 졸업식 당시 김경진 교수 | 대학 시절, 그리고 변리사로 일하시는 동안 쌓아 오신 경험이 변호사 업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로펌에서 제약 및 화학 분야의 특허 심판 및 소송을 주로 담당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대학 시절에 배웠던 화학공학을 다루는 전공 지식이 변호사로 일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실 전공 지식 자체가 기억에 남아 있기보다는 해당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가 있었고, 이러한 측면이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학부에서 반드시 이공계를 전공하지 않더라도 공학과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가 있다면 IP 분야의 변호사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 변호사로 일하시는 동안 기술과 지식재산(IP) 관련 업무를 주로 다루셨어요. 지금 돌아봤을 때 특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으신가요? 글로벌 제약사를 대리하여 국내 최대 규모의 특허권 침해소송 및 심판을 대리하였던 사건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사건은 블록버스터 의약품*을 보호하는 특허와 관련된 소송이었는데, 당시 수많은 제약회사가 시장에 진입하려 하는 상황이었고, 이와 관련하여 수많은 특허권 침해소송 및 심판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에서도 동시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각국의 주장이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사건이었는데요. 그래서 한국, 미국, 유럽 등의 특허 법리를 동시에 고려하여 한국에서의 주장 및 논리를 정교하게 다듬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 블록버스터 의약품: 간 매출 10억 달러 이상을 올리는,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대형 의약품 |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법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움직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식재산 분야에서 활동하시면서 이 간극을 체감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기술혁신의 시대에는 특허권의 보호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특허권 침해소송이나 특허무효 심판도 신속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특허권 침해소송이나 특허무효 심판 절차는 기존의 틀 안에서 유지되고 있고, 제도 자체가 급진적으로 변경되지는 않습니다. 법적 안정성 등을 고려했을 때 소송 절차 등이 급진적으로 변화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다만, 이러한 점에서 아무래도 법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로스쿨 생활을 하셨던 성균관대학교를 이제는 교수로서 다시 찾게 되셨는데, 학생 시절과는 또 다른 위치에서 모교를 마주하게 된 소감이 궁금합니다. 우선, 모교에 교수로서 다시 돌아와 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매우 영광입니다. 제가 로스쿨을 다닐 때 교수님들로부터 배운 것들을 저도 학생들에게 잘 전달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강의를 준비하면서, 교수님들께서 수업 시간에 하신 말씀들을 다시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교수로서 다시 학교를 찾게 된 것이 잘 실감이 나지는 않고, 아직 반쯤은 학생 같은 느낌입니다. 다행히 법학관 건물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반가운 마음도 있습니다. 사실 법학관 건물의 환경은 더 개선된 것 같아서 이 점도 보기 좋았습니다.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모습이나 활기찬 모습을 보니, 예전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습니다. 또한, 로스쿨 재학 당시에는 학교 공부가 바빠서 여유 있는 마음으로 캠퍼스를 보기 어려웠는데요. 오랫동안 학교 밖에서 지내다가 다시 캠퍼스로 돌아오니 우리 대학의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이 새롭게 다가왔던 것 같아 좋았습니다. | 풍부한 실무 경험을 안고 이제 교단에 서게 되셨는데요.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법조인의 태도나 관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법학전문대학원 기간은 법조인으로서 기본기를 다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공부를 열심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실무에 나가게 되면, 차근차근 공부하기는 어려워지니까요. 또 당부드리고 싶은 한 가지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원하는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혼자서만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로 열심히 질문하고 도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어떠한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는 고민하지 말고, 일단 시작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는 성균관대학교 학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믿고 도전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학점이 잘 나오지 않거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였을 때 좌절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어떠한 일에 실패했을 때, 내 인생이 이미 결정되어 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러한 일들은 과정에 지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에 학점이 좋았다고 해서 꼭 그 삶이 성공한다거나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위 환경에 흔들리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No. 100
- 2026-04-02
- 7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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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융합공학과 유창식
반도체의 균형점을 설계하는 연구자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성능이 작은 반도체 칩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반도체의 성능을 높이기 위한 연구자들의 고민은 지금도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다. 오늘 만나볼 유창식 교수 역시 그 최전선에서 반도체 기술의 발전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아날로그 회로 설계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은 유창식 교수는 삼성전자 연구원, 한양대학교 교수, fabless 창업 등 학계와 산업계를 아우르는 다양한 경력을 쌓아왔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으로 재직하며 DRAM 개발과 차세대 메모리 기술을 이끌었다. 산업 현장과 대학 연구실을 넘나들며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전문성을 축적해 온 그는 올해 3월, 우리 대학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성균관대학교 학우들에게 참된 가르침을 선사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녕하세요. 올해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융합공학과에 부임하게 된 유창식입니다. |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융합공학과에 부임하시게 된 계기와 배경이 궁금합니다. 저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서 4년간 근무했습니다. 이후 한양대학교 융합전자공학부에서 18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당시 삼성전자에서 연구년을 지내던 중이었는데 다시 회사로 돌아와 일을 하면 좋겠다는 복귀 제안을 받아 DRAM 개발실 부사장으로 5년을 근무했습니다. 이후 이렇게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융합공학과에 부임하게 되었어요. 삼성전자와 한양대학교에서 쌓은 산업과 학문 현장의 경험이 성균관대학교의 산학협력 강화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회로 설계 분야를 포함한 교수님의 연구 분야를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세요. 제 연구 분야는 아날로그 회로 설계입니다. 많은 분이 이미 디지털 시대인데 왜 여전히 아날로그를 연구하느냐고 묻곤 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인지하는 빛, 소리, 촉각 등 모든 정보는 본질적으로 아날로그입니다. 이를 디지털 정보로 전환해 처리한 후 다시 아날로그 신호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죠. 실제로 제가 삼성전자에서 개발했던 DRAM의 경우, 정보를 ‘0’과 ‘1’의 디지털 형태로 저장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정보를 DRAM 내부에서 쓰고 읽는 내부 동작 과정에서는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아날로그 회로 기술이 사용됩니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아날로그 회로는 반도체 시스템의 핵심 기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년 전 한양대학교 재직 시절에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을 지원받아, 기존 방식과는 다른 접근으로 아날로그 회로를 구현하는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해당 연구는 시간 정보와 통계적 기법을 이용하는 것으로, 반도체 설계 분야 최고 학회인 ISSCC와 국제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되었습니다. ▲ ISSCC에 게재된 유 교수의 논문 | 학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3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반도체 분야에 몸담아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이 분야를 연구하시면서 느낀 반도체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반도체 분야도 소자, 공정, 설계 등 다양한 기술 영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 회로 설계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회로 설계는 전자공학에서 연구하는 다양한 이론을 실물로 구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론이 실제로 구현되어 동작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이 분야의 매력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10여 년 전 제가 ISSCC의 프로그램 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학회에서 “아날로그 회로 설계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주제가 논의된 적이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빠른 발전으로 아날로그 회로가 구시대적인 기술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오히려 현재는 아날로그 회로 설계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거든요. 앞으로 더 많은 학생이 저와 같은 분야에서 일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 한양대학교 교수 재직 중 삼성전자 임원으로 스카우트되어 1998년 이후 18년 만에 삼성에 복귀하신 이력이 인상 깊었습니다. 삼성전자에서 맡으셨던 프로젝트와 그 성과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의 DRAM 개발실에서 근무했습니다. 여러분이 사용하고 계신 스마트폰, 노트북, 컴퓨터를 비롯해 유튜브를 보거나 제미나이를 사용할 때 접속하게 되는 google의 서버에 들어가 있는 DRAM*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제가 근무한 5년 동안 DRAM의 속도와 집적도는 2배나 향상되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팀원들과 함께 LPDDR6*와 DDR6*의 표준을 정의하는 JEDEC*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특히 LPDDR6의 경우, JEDEC 표준 업무와 개발 업무를 동시에 진행하여 세계 최초로 제품 개발을 완성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 연구의 결과는 올해 2월 ISSCC에서 발표되었으며, 내년에 출시될 스마트폰에 해당 제품이 탑재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DRAM: 동적 랜덤 액세스 메모리로, 메모리 반도체의 일종. *LPDDR6: ‘Low-Power Double Data Rate’의 6세대 규격으로, 모바일 기기에 쓰이는 저전력 DDR 메모리의 최신 세대 *DDR6: DRAM의 차세대 규격으로, 상승·하강 에지 모두에서 데이터를 전송하는 DDR(Double Data Rate) 기술을 적용한 최신 메모리 *JEDEC: 반도체 표준을 제정하는 국제표준화 기구로, 메모리·패키징·신뢰성 시험 등에서 널리 쓰이는 규격 체계를 제공. >삼성전자 부사장 재직 시절 관련 기사 ▲ D램 관련 발표를 하는 유 교수 | 고성능과 저전력을 동시에 구현하는 반도체 개발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들었습니다. 반도체 연구 과정에서 마주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고, 이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날로그 회로에 많이 사용되는 커패시터*는 실리콘 면적을 많이 차지합니다. 이는 곧 칩 면적 증가로 이어져 가격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해요. 저가격이라는 요소를 만족시키기 어려워지죠. 당시 앞서 말씀드린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에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제가 찾은 해결책은 시간 정보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커패시터는 전압을 적분하는 특성이 있으며, 전압 제어 발진기(VCO) 회로 역시 전압을 적분하여 위상 정보를 만들어내는 특성을 보입니다. 이 둘 사이의 유사성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치열하게 연구한 결과, 회로의 면적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 고성능, 저전력, 저가격은 모든 반도체 개발자가 지닌 목표입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요소를 동시에 완벽하게 만족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일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죠. 결국 최종 제품의 성공 여부는 이 세 요소 사이에서 어떤 기준으로 최적의 균형점을 찾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커패시터: 내부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주는 부품 | 스위스 연방 공대(ETH) 연구실과 캘리포니아 실리콘 이미지에서도 근무하셨습니다. 이러한 다년간의 해외 연구 경험이 현재 교수님의 연구 방향이나 철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박사 학위를 마치고 post-doc으로 스위스 연방 공대 (ETH)에서 16개월 정도 근무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고, IMF 구제 금융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박사 학위 기간에 발표한 논문을 ETH의 지도교수께서 높게 평가해서 해외로 나가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어요. 당시 근무를 하며 우리나라에 비해 ETH는 대학원 연구실이 굉장히 체계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행정 업무를 전담하는 직원과 실험 장비를 관리하는 직원이 별도로 있어 대학원생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름 방학에 2주 이상 휴가를 갈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점 중의 하나였어요. 그런 인상을 바탕으로 이후 한양대학교에서 제가 지도하는 연구실도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한편, 한양대학교에서 첫 번째 연구년을 가게 되었을 때 실리콘 이미지로부터 제안받아 1년간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개발하던 제품이 최종 field test 단계에서 간헐적으로 결함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수천 번 테스트해야 가끔 한 번씩 불량이 발생하기 때문에 검수 단계에서 걸러내는 것도 불가능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문제를 해결하면서 설계 단계에서의 면밀한 검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제 양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대학 연구에서 경험하기란 쉽지 않지만, 졸업 후 현장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학생들에게도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개발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post-doc: 박사 학위 취득 후 일정 기간 연구 기관에서 연구책임자 지도하에, 연구과제에 참여하며 연구 능력과 성과를 심화하는 연구자(연수자) |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은 연구 분야나, 현재 관심을 두고 준비 중인 연구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DRAM scaling* 한계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꽤 오랫동안 alternative memory에 관한 연구를 해왔지만, 미래의 DRAM 역시 결국 DRAM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결론입니다. 즉, DRAM을 대체할 기술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AI 시스템이 요구하는 더 높은 대역폭과 용량을 지니면서도 더 낮은 전력과 비용을 지닌 DRAM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가 숙제인데 정답을 아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저는 삼성전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정답을 성균관대학교 학생들과 같이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아날로그-혼성 신호 회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될수록 공급 전압은 계속 낮아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존 아날로그-혼성 신호 회로 기술의 한계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도 찾아보려고 합니다. *DRAM scaling: 반도체의 집적도와 비용 효율을 높이는 과정 | 마지막으로 올해 교단에서 새롭게 만나게 될 성균관대 학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훌륭한 성균관대 학생들과 생활하게 되어 너무 기쁘고 기대됩니다. 제가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여러분께 아낌없이 나누고자 하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연구실 문은 언제든 열려 있고, 전화, 이메일 모두 환영합니다. 유 교수는 이상적 엔지니어란 스스로 사고하고, 동료들과 토론하며,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이 유 교수의 강의를 통해 이러한 태도를 갖춘 인재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 No. 99
- 202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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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학과 김영호
스크린을 넘어 교단으로 ‘블랙 팬서’, ‘inZOI’ 영상학과 김영호 교수
어릴 적, 텔레비전 화면 앞에 앉아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방영 시간을 기다리던 순간들은 우리의 어린 시절을 넘어서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기억이 된다. 캐릭터들이 화면 속 세계에 머물지 않고 현실로 넘어와 우리 삶의 지평을 넓혀 나갈 때, 이 순간들은 단순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넘어선 새로운 상상력과 꿈으로 변한다. 2026년 3월, 우리 대학 영상학과에 부임하게 된 김영호 교수 역시 그러한 상상력에 이끌려 창작의 길을 오랜 시간 걸어 왔다. <블랙 팬서>, <가필드 더 무비> 등 다양한 영화 프로젝트는 물론, 게임 <inZOI>의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참여하며 스크린과 플랫폼을 넘나드는 경험을 쌓았다. 화면 속 세계에 숨결을 불어 넣던 그가 교단 앞에 서기까지의 여정을 함께 들여다보자. 안녕하세요. 2026년 3월부터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에 함께하게 된 김영호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지난 15년간 영화와 게임 산업에서 애니메이터로 활동해 왔습니다.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 여러분과 많이 나누고 배우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산업 현장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수로서 새로운 출발점 앞에 서 계시는데요. 교육 현장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대학생 때부터 언젠가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오래된 꿈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교육이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 사람이 다시 세상을 움직인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로 교육 현장으로 오기보다는, 먼저 산업에서 충분히 부딪혀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할리우드 현장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배우고 성장했고, 그렇게 쌓은 시간이 나중에 학생들에게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기반이 되리라 믿었습니다. ▲ 왼쪽부터 Scoob! 제작 당시, Ghostbusters Wrap Party 그리고 이제는 그 경험을 나눌 시점이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좋은 인연으로 성균관대학교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어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오랫동안 마음에 두었던 목표를 이제 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 <고스트버스터즈><블랙 팬서>와 같은 실사 기반 애니메이션부터 <스쿠비!><가필드>와 같은 형식의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형식의 제작 현장에 참여하셨어요. 서로 다른 작업 환경 속에서 체감하신 공통점이나 차이점이 있나요? 공통점은 결국 모두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입니다. 피처 애니메이션이든 VFX 기반 실사 영화든, 캐릭터가 움직이고 감정을 전달한다는 본질은 같습니다. 다만 표현 방식과 요구되는 방향이 조금씩 다를 뿐입니다. 예를 들어 <블랙 팬서>나 <고스트버스터즈> 같은 실사 영화에서는 실제 배우와 CG 캐릭터가 한 화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이질감이 없도록, 물리적으로 설득력 있는 움직임과 리얼리티를 유지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반면 <스쿠비!> 또는 <가필드 더 무비> 같은 작품은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캐릭터가 중심입니다. 그래서 캐릭터가 가진 고유한 성격, 리듬, 움직임의 ‘헤리티지’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그 캐릭터의 느낌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 <블랙 팬서>(2018) ©Marvel Studios, <The Garfield Movie>(2024) ©DNEG 겉으로 보면 많이 달라 보이지만, 결국은 기본이 얼마나 탄탄한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드로잉 실력이 있다면 그것을 사실적으로도, 캐리커처처럼 과장해서도 표현할 수 있는 것처럼,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이 단단하면 표현 방식은 선택의 영역이 됩니다. |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서 교수님께 영감을 주었던 작품들, 혹은 교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작품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어릴 적 TV에서 보던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루니툰스 시리즈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Fantasia는 매우 큰 충격이었습니다. 음악과 이미지가 그렇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번쩍하게 했고, ‘나도 언젠가 저런 작업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또한, 루니툰스의 Bugs Bunny와 Daffy Duck의 키치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캐릭터마다 가지고 있는 특유의 유머와 유쾌함이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 <Looney Tunes> ©Warner Bros. Cartoons 몇 년 전 DNEG에서 작업했던 <Coyote vs. Acme>은 실사와 루니툰스 캐릭터가 결합한 작품이었는데, 어린 시절 동경하던 캐릭터들을 직접 애니메이션화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도 매우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어 저도 기대가 됩니다. ▲ <Coyote vs Acme>(2026) ©DNEG | 오랜 시간 동안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시다가, 2024년에 크래프톤이라는 게임 회사에서 새출발하셨습니다. 작업 분야를 넓혀 나가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캐나다에서 오랫동안 할리우드 영화와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에 참여해 오던 중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꿈꾸던 작업을 하나씩 경험하고,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다 보니 어느 순간 ‘‘이제는 다음 단계로 가볼 때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그 시기에 AI 기술의 급격한 변화가 시작되었고, 창작 환경 자체가 달라지는 흐름 속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특히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환경에서 작업해 보고 싶었고, ‘AI First’를 내세운 크래프톤이 한국 최초의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 inZOI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기술적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에 임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 크래프톤 재직 당시, inZOI 얼리액세스 런칭 후의 모습 | 애니메이션과 게임이라는 다른 분야의 작품 제작에 참여하시면서 가장 크게 느낀 차이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단방향 매체입니다. 제작이 완료되고 개봉하기 전까지는 내부 시사회나 테스트 스크리닝을 통해 반응을 살필 수는 있지만, 결국 관객의 최종 반응은 개봉 이후에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흥행이나 평가 역시 그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그래서 저 역시 제가 작업한 영화가 개봉했을 때, 관객들이 극장에서 나가며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유심히 들어본 적도 있습니다. 현장의 반응이 가장 솔직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게임은 훨씬 실시간에 가깝습니다. 최근에 작업했던 inZOI처럼 얼리 액세스 형태로 공개될 때에는 커뮤니티의 반응이 곧바로 개발 방향에 영향을 미칩니다. 업데이트 과정에서도 유저들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고, 특정 니즈가 분명하다면 방향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 게임 인조이(inZOI) ©Krafton 이처럼 영화가 완성도를 최대한 끌어올려 한 번에 보여주는 구조라면, 게임은 사용자와 함께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는 구조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그 점이 두 분야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동시에 게임 제작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현업 경험을 지닌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특히 강조하고 싶은 역량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실무 현장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느낀 것은, 완벽하게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프로페셔널의 영역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현장에서는 일정과 책임이 분명하므로 완성도에 대한 기준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학생일 때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함을 증명하는 시기라기보다, 많이 시도하고 많이 실패해 보는 시기라고 봅니다. 저 역시 영화와 게임 작업을 오가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 과정이 결국 지금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산업은 계속 변합니다. 기술도 바뀌고, 플랫폼도 바뀌고, 관객과 유저의 기대도 달라집니다. 그런 환경에서는 정답을 아는 사람보다,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사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더 오래 갑니다. ▲ 유학생 시절, 랩에서 작업하는 김영호 교수 그래서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실패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학생일 때만 가질 수 있는 시간과 자유를 충분히 활용해, 스스로 궁금한 것을 끝까지 밀어붙여 보셨으면 합니다. 그 경험이 결국 가장 큰 자산이 됩니다. | 올해 3월부터 우리 대학 영상학과에 부임하게 되셨습니다. 산업 현장에 오래 몸담고 계시다 오랜만에 찾는 학교인 만큼 감회가 새로울 듯한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교단에 서시는지 궁금합니다. 현장에서는 팀원들과 함께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프로젝트의 완성도와 일정, 그리고 팀워크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하지만 교단에 서게 되면서 기준이 조금 달라졌다고 느낍니다. 이제는 결과물뿐 아니라,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남길 수 있을지, 어떤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지를 더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 대학 시절의 어느 한 시점에 제가 함께한다는 것은, 그 학생의 인생에서 작은 전환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임감과 부담도 있지만, 동시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창작자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의 경험을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 교수로서, 그리고 창작자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저는 어릴 때부터 이 세상을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현업에 있을 때는 좋은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었습니다. 이야기가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수로서 그 역할이 조금 더 확장되었다고 느낍니다. 교육을 통해 좋은 창작자를 길러내는 일, 그리고 연구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일 역시 세상을 변화시키는 또 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제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나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타 창작자든 학생이든, 각자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이번 학기에 새롭게 만나게 되실 영상학과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저는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습니다. 고3 시절 영상학과에 지원했던 기억이 있는데, 시간이 흘러 교수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감회가 남다릅니다. 그래서 이 자리가 더욱 뜻깊게 느껴집니다. 영상학과에 입학한 여러분은 이미 충분한 가능성과 자신만의 개성을 갖춘 분들입니다. 저는 최근까지 현업에서 작업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실제 현장과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기초는 탄탄히, 변화에는 유연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서로 많이 배우고, 많이 성장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 No. 98
- 202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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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 동물농장’, ‘꼬꼬무’ 유혜승 PD(신문방송학과 09)
시사와 예능을 넘나드는 연출가
개인주의가 퍼지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어려워진 오늘날, 방송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타인과 사회의 이야기를 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번 인물포커스는 그러한 방송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한 연출자를 소개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TV 동물농장> 등 인기 프로그램을 연출한 유혜승 PD는 우리 대학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013년 SBS에 입사 후 현재까지 시사교양 PD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시사교양과 예능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점에 사람들이 다가가기 쉬운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녕하세요.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09학번 유혜승입니다. 14년 동안 SBS 시사교양 PD로 활동하고 있어요. | PD라는 꿈을 꾸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방송반 등 미디어와 관련된 동아리 활동을 많이 했지만, 사실 TV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기상 정보를 전달하는 기상 캐스터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미디어 분야 전반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고, 그러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PD라는 꿈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 수많은 장르 중 ‘시사교양’을 선택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이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데 비해, 저는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PD라는 직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던 시기부터 이 분야로 진로를 정했습니다. | 시사교양 PD가 맡는 역할을 제작 전반의 과정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최근 들어 PD라는 직업의 범위가 상당히 넓어졌다고 느낍니다. 과거에는 방송사에 소속된 PD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유튜브 PD를 비롯해 다양한 플랫폼과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포괄하는 개념이 되었어요. PD는 말 그대로 ‘생산자’라는 의미로서 기획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속해 있는 방송사의 PD를 기준으로 보면, A to Z 즉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다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무엇을 만들 것인지 고민하는 기획 단계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안을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다만 드라마나 예능이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는 작업이라면,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소규모 인원으로 제작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취재를 나가면 운전 기사님과 담당 PD, 조연출까지 세 명이 전부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시사교양 PD는 기획안을 쓰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촬영, 편집, 자막 작업까지 제작 전반의 일을 두루두루 맡아서 합니다. ▲ 실제 촬영 현장 | PD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시사교양 PD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역량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사교양 PD는 제작의 전 과정을 직접 책임져야 하므로 하나하나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그와 함께 저는 시사교양 PD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잘 듣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PD를 준비하시는 많은 분이 방송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데 집중합니다. 실제 면접 볼 때도 “세상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죠. 그런데,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시사교양 PD는 내가 하고 싶은 말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그것을 잘 포착해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느낍니다. 물론, PD가 어느 정도의 문제의식과 방향성을 가지고 연출해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으로서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촬영 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매우 많아요. 인터뷰하기로 하신 분이 당일에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순간에는 상황에 따라 빠르게 판단하고 대응하는 순발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계획적이기보단 즉흥적인 편이지만, 오히려 그런 성향 덕분에 돌발 상황에서도 그때그때 순발력을 키워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현재 연출하고 계신 <TV 동물농장>은 ‘동물’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만큼 현장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실제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혔던 경험과 극복 과정이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동물은 사람처럼 언어로 소통할 수 없어서 연출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TV 동물농장>은 스토리텔링 기반의 프로그램이거든요. 그만큼 제작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크지만, 결국 그 어려움을 이야기로써 극복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며칠에 걸쳐 다친 고양이를 구조하는 과정을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 계획은 구조에 성공하고 치료를 거쳐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는 결말이었죠. 그런데 촬영 도중에 고양이가 사라지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주변을 샅샅이 찾아보고 탐정까지 고용했는데도 끝내 고양이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런 경우가 원래 의도했던 연출이 틀어져 버린 예상치 못한 상황인 거죠. 이때, 전단을 제작해 고양이를 찾는다는 내용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고양이를 목격한 제보자를 기다리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하게 됐습니다. 비록 원래 의도했던 결말과는 달랐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 거죠. 이처럼 현장에서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새로운 이야기를 짜고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끊임없이 판단하게 됩니다. 동시에 시청자에게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방식은 무엇인지도 고민하는 것 같아요. 말로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동물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어려움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만큼 ‘자연스러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어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느낍니다. 연출의 영역에서는 언제나 연출과 조작의 경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결국 이러한 판단을 어떻게 내릴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PD의 역할이자 의무인 것 같습니다. |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다소 무겁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시청자들이 끝까지 방송을 보게 만들어내는 PD님만의 기획력이 궁금합니다. 일반적으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떠올리면 무겁고, 진지하며, 때로는 어렵고 무섭기까지 한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고정관념과는 반대로 ‘재미있는’ 시사교양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기획, 연출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도 이런 통념을 완전히 뒤집어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나온 기획이었어요. 재미를 느끼려면 초등학생도 이해할 만큼 쉬운 내용으로 풀어야 했고, 그래서 전문가보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의 느낌을 줄 수 있는 출연자들을 섭외했습니다. 저명한 역사학자가 아닌 내 주변 사람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콘셉트가 그렇게 나오게 되었어요. 기존 시사교양 프로그램과는 결이 다른 이러한 시도가 시청자들에게도 신선하게 다가갔고 결과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재미’보다 ‘의미’를 중시했다면, 오늘날엔 ‘재미’를 더 중시해야 하는 것 같아요.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순수 웃음일 수도 있고,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형태이든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제 기획의 포인트입니다. 사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안 보면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의미’는 전하려는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도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도 거창한 결론 대신 “그날의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이라는 질문으로 방송을 마무리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단 하나의 생각이라도 남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 시청자 피드백 중에 가족과 함께 방송을 보며 각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되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처럼 이 방송을 통해 누군가는 어머니의 관점에서, 또 누군가는 자식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며 나름의 의미를 갖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출연진들과 유혜승 PD | 많은 노고 끝에 방송이 완성되었을 때, “이 일을 하길 잘했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기억에 남는 시청자의 반응이나 개인적으로 큰 보람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연출 당시 YH 무역 사건을 다뤘습니다. 가발 공장에서 일하던 소녀들이 일방적으로 해고되고 탄압받았던 이야기로 사건 발생 후 40여 년이 지나서야 다시 조명된 일이었어요. 방송이 나가고 사무실로 한 여공분이 펑펑 우시면서 전화하셨어요. 이때까지 자신의 과거를 남편, 자식한테도 숨기고 살아왔는데 방송을 보면서 다 털어놓아 평생의 한이 풀렸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제가 한 건 그분들의 이야기를 소중히 담아서 하나의 이야기로 대중들에게 보여준 것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제 방송이 누군가의 삶에 남아있던 한을 털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경험은 PD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해당 방송분 요약본 보러가기 | PD님께서 방송을 만들며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는 좌우명이나 신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거창한 신념은 아니지만, 제 연출적 욕심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늘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조금만 더 극적으로 표현하면 방송이 더 잘 완성될 것 같다는 유혹에 빠지곤 하거든요. 예를 들어 폭력적인 상황을 다룰 때, 시청자들이 같이 공분할 만한 지점을 더 강조하는 것처럼요. 그런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인터뷰이의 진심이 가려지진 않는지 혹은 과도하게 부풀려져서 본래의 맥락이 왜곡되진 않는지 조심스럽습니다. 결국 더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되, 동시에 타인을 향한 배려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방송을 만들고 있습니다. | 앞으로 PD로서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은 콘텐츠나 주제가 있으신가요? 사실 <TV 동물농장>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동물에 대해 잘 몰랐고 관심도 크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인간은 이 세상에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 훨씬 많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다루고 싶어졌습니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 혹은 동물과 동물의 소통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안 들리는 영역이요. 이 분야는 무엇보다도 세심한 관찰을 요구하는 작업이기에 저는 앞으로도 듣고, 관찰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 같습니다. | 대학 시절을 돌아보았을 때, PD가 되는 데 가장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반대로 “그때 이건 꼭 해볼걸” 하고 아쉬움이 남는 경험도 있으신가요? 저는 대학 시절에 하고 싶은 일은 다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하지 못해서 아쉽다는 후회는 해본 적 없습니다. 이 직무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비즈니스 동아리에서의 경험이 가장 기억이 남습니다. 당시 동아리에서 한국에 거주 중인 이주 여성들을 위한 산후조리 지원 서비스를 운영했는데, 비록 전문적인 활동은 아니었지만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성격적으로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주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직접 듣고 이해하려 노력했고, 그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요. 관심이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도전하는 편이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교환학생도 제가 궁금했던 나라인 이탈리아로 갔습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했던 아르바이트도 돌이켜 보면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종종 PD가 되기 위해선 어떤 경험이 필요하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정해진 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이야기해 드리고 싶어요. 실패하더라도 상관없으니, 조금이라도 흥미가 생기는 일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도전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 마지막으로 시사교양 PD를 꿈꾸는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자신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도 충분한 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관찰과 애정은 결국 사회를 향한 관심으로 확장된다고 생각합니다. PD를 준비하기에 앞서 스스로가 타인과 사회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먼저 돌아봤으면 합니다. 만약 그 답이 ‘그렇다’라면, 이 일이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재미있는 직업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 No. 97
- 2026-02-19
- 3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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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전기공학부 김세정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세상을 움직일 때
빛을 나노미터 단위에서 다루는 나노광학이라는 학문은 오늘날 우리가 이용하는 다양한 첨단 기술과 맞닿아 있는 연구 분야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세계에서 빛의 성질을 정밀하게 연구하는 이 학문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미래로의 발전 가능성을 한 단계씩 높여 왔다. 나노광학의 최전선에서 해외 연구 및 교육 활동을 이어 오던 김세정 교수는 2025년 9월, 우리 대학 전자전기공학부에 합류하며 나노광학 연구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낯설고도 흥미로운 해외 연구 환경 속에서 더욱 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안고 귀국한 김세정 교수의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 보자. 안녕하세요, 2025년 9월에 성균관대학교에 부임한 김세정이라고 합니다. | 멜버른 대학교에서 오랜 시간 동안 연구와 교육 활동을 이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 한국으로 귀국해 성균관대학교에 부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멜버른 대학교에서 이직 준비를 하면서 국내 대학뿐만 아니라 미국의 여러 대학에도 함께 지원하고 있었는데요. 그중에서도 성균관대학교의 연구 인프라나 활발한 산업 연계 기회, 우수한 학생들까지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연구자로서 좋은 기회라고 판단되어 최종적으로 우리 대학으로의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학창 시절을 보낸 고향인 수원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의의가 있었습니다. | 교수님께서 연구하시는 나노광학은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낯선 주제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노 및 양자광학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빛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매일 접하기에 매우 친숙하지만, 현재 연구 최전선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사실 광학의 응용 분야는 매우 광범위해서 디스플레이나 광통신 등 광학 기술이 접목되지 않은 분야를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제가 연구하는 분야는 빛 알갱이, 즉 광자(photon)를 활용하여 여러 광 디바이스를 만드는 것인데요.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기기들을 들여다보면, 그 내부에 수많은 전자 소자들이 집적되어 컴퓨팅 성능을 구현하듯, 저는 광자로 광소자를 제작하고 이들을 칩 위에 집적함으로써 미래의 컴퓨팅 및 통신 디바이스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 한국은 나노광학 기술 개발 분야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오랜 해외 연구를 바탕으로 보았을 때, 한국의 연구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강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한국 연구 환경의 강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국내 대학들의 연구 역량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20~30년 전만 해도 해외에서 선진 기술을 습득해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국내에서 학위를 마친 박사들이 교수로 임용되는 사례가 더 많을 만큼 해외 명문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강력한 제조업 인프라와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의 존재는 관련 연구를 수행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특히 제조 기반 산업이 부족한 호주에서 생활하며 기업의 중요성을 체감했기에, 탄탄한 생산 기반을 갖춘 한국의 강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 해외 대학에서 한국인 연구자가 교수로 임용되는 사례가 흔한 경우인지 궁금합니다. 또한, 그 자리에 서기까지의 과정과 임용 이후의 경험들이 교수님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요? 요즘에는 외국에 계시는 한국인 교수님들이 적은 숫자는 아니긴 한데, 아무래도 모든 학위를 국내에서 받은 분 중에 해외 임용이 되는 경우는 아직도 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네트워킹이나 임용과 관련된 정보를 얻는 측면에서는 쉽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고, 그래서 첫 임용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했습니다. 박사후연구원을 총 6년을 했거든요. 그런데도 지나고 보면 모든 과정에서 얻은 게 있었습니다. 일단 제 그룹을 꾸리기까지 총 세 분의 지도교수님 밑에서 일하면서 각 연구실의 연구 노하우와 문화를 배울 수 있었고요. 멜버른대에서 연구실을 꾸리고 그룹 PI (Principal Investigator)로 성장하는 동안에는 호주 대학교의 의사 결정 방식, 직장 문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두 나라에서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시야를 공유하게 되었고 전보다 더 유연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된 것이 지난 경험들이 남겨준 가치라고 생각됩니다. ▲ 멜번에서 KASEA(Korean Academy of Scientists and Engineers in Australia)의 회장으로 활동할 당시, 멜번 (전)총영사와 김세정 교수 | 타지에서 오랜 시간 동안 연구를 진행해 오셨는데, 그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시드니에서 4년 동안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내고, 멜버른대학교 교수로 4년 반, 총 8년 반을 호주에서 지냈는데요. 처음에는 문화적, 언어적 차이를 극복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으나, 어렵긴 했지만 재밌게 배웠습니다. 특히 해외에서 교수로 지낸 지난 4년은 현지 학계 시스템과 호주의 조직 문화를 깊이 있게 체감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인 과학자로서 한인 커뮤니티의 중요성도 몸소 깨달은 결실 있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 시드니공과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 시절 사진. 광학 실험 셋업을 다루고 있는 모습 | 교수님께서 진행하신 연구뿐 아니라 글쓰기 활동 또한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과학동아>에 집필하신 칼럼들이 흥미로웠는데요, 연구자로서의 글쓰기와는 접근 방식이 상당히 다를 듯합니다. 각 분야의 글을 쓰실 때 두는 차별점이 있으신가요? 어쩌다 보니 논문만 쓰던 연구자가 대중 책도 집필하고, 또 과학동아에도 글을 썼는데요. 글쓰기 스타일에 따로 차별점을 두고 있지는 않고, 누구나 읽기 쉽도록 쓰자는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 아무래도 글쓰기가 제 주 업무는 아니다 보니, 글을 자주 써서 실력을 늘리자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이로운넷이라는 매거진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 서서히 글 쓰는 재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과학동아는 어렸을 때 너무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제가 연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고요. 주로 중고등학생들이 읽는 글이기 때문에 넷플릭스나 영화에 나온 장면과 최신 과학 동향을 연결해서 재미있으면서도 교육적인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관련 칼럼: 과학동아 2024년 9월호, 투명인간이 되는 두 가지 방법 | 지난해 9월, 우리 학교 전자전기공학부의 교수로 부임하셨습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교육자로서, 또는 연구자로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궁금합니다. 교육자로서 보람이자 성취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현하고 확장하도록 돕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학문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작은 성공(micro-success)들을 경험하며 자신감 있는 인재로 성장하고, 나아가 사회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구성원이 되는데 제가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연구실에 오는 대학원 학생들과는 즐겁게 연구하면서도, 결코 쉽지만은 않은 과제들을 끈기 있게 완수해 내는 성취의 기쁨을 함께하는 연구실을 만들고 싶습니다. 구성원 모두가 세계 최고의 연구자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 교수님의 연구실은 어떤 공간인지 궁금합니다. 연구실을 이끌어 가시는 과정에서 교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은 무엇인가요? 성균관대에서는 이제 막 첫걸음을 시작하고 있는데요. 다행히도 많은 학생이 지원해 주어서, 그중에서 선발한 7명의 학생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저와 대학원생 모두를 포함한 구성원들의 성장입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그룹으로서의 성공과 구성원 각자의 성장이 일치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특히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사이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해주는 젊은 학생들에게, 제 연구실에서 보내는 대학원 기간이 자신감을 가지고 인생의 중후반부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발판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연구실은 그들에게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말하고 마음껏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샌드박스여야 하며, 그러한 환경은 지도교수와 학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김세정 교수의 NOVA Lab 홈페이지 | 교수님이 바라보시는 나노광학의 미래가 궁금합니다. 나노광학은 어떠한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나요? 광학 연구는 기존의 전자 기반 기술이 직면한 병목 현상(bottleneck)*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예중 하나로 우리 연구실에서도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인 광 신경망(Optical Neural Network, ONN) 연구가 있습니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사용자가 증가하면서, 글로벌 테크 기업들은 데이터 센터 구축과 전력 수급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저전력·고성능 AI 하드웨어가 필수적인데, 빛을 이용해 연산 효율을 극대화하는 ONN이 대안책이 될 수 있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광학 기술은 전자기기의 물리적 한계를 타개할 가능성이 있어, 미래 기술로 활발히 연구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병목 현상: 전체 시스템의 성능이나 속도가 특정 하나의 구성 요소 때문에 제한되어 저하되는 현상 | 마지막으로, 연구자의 길을 꿈꾸는 성균관대학교 학우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에 온 지 이제 막 넉 달이 지났는데, 학생들을 상담할 때 "이제 나이가 많아서 늦은 것 같아요"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꽤 많이 만났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연령대별로 기대되는 역할이 명확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자의 길을 걷는 것은 보편적인 기대와는 조금 다른 길이고 그만큼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과학적 호기심이 있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배우고 싶다면, 학부 연구생부터 경험을 쌓으며 진로를 탐색해 보길 추천합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늦었다고 생각되는 때가 가장 빠른 때입니다.
- No. 96
- 2026-02-02
- 8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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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학과 우사이먼성일 교수
딥페이크 탐지 기술로 사회를 지키는 연구자
생성형 AI의 발전과 함께 AI를 악용한 딥페이크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 대학 소프트웨어학과를 비롯해 인공지능대학원, 데이터사이언스융합학과에 소속된 우사이먼성일 교수는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 발맞춰 딥페이크 탐지 연구를 통해 이에 대응하고 있다. 그는 Google Scholar 기준 딥페이크 분야 전 세계 8위에 오를 정도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기술은 학문적 연구에만 국한된다는 과거 통념과 달리, 우사이먼성일 교수가 보여주는 기술은 실질적인 문제 해결의 핵심 키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579호 인물포커스에서는 인공지능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그의 철학을 자세히 들어보며, 기술은 어떤 방향성을 갖고 연구되어야 할지 질문을 던진다. | 안녕하세요, 교수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성균관대학교 소프트웨어학과, 인공지능대학원, 데이터사이언스융합학과에 소속된 우사이먼성일입니다. 2019년에 성균관대에 부임한 이후 인공지능 보안, 특히 딥페이크 탐지 관련 연구를 열심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미국 NASA 제트추진연구소에서 9년 정도 연구원으로 일하였습니다. 직장을 다닐수록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늦깎이로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인생에서 후회 없는 가장 큰 투자였던 것 같습니다. 현재 학생들과 새로운 지식을 공유하고, 하고 싶은 연구 및 일을 할 수 있어서 바쁘면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 (왼쪽부터) 우사이먼성일 교수, 오픈AI 창업자 샘 알트만 | 최근 딥페이크 탐지 기술 연구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표창을 수상하셨습니다. 해당 연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는 2017년부터 딥페이크 탐지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딥페이크 및 인공지능의 악용 사례가 큰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진 않았지만, 현재 생성형 AI 기술의 발전에 더불어 점점 더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정보 조작, 가짜 뉴스, 지인 능욕 등 많은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악용 사례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하게 진화하는 여러 종류의 딥페이크를 높은 성능으로 탐지할 수 있는 강건성과 일반화 성능이 높은 탐지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많은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학습하여 탐지할 수 있는 딥러닝 아키텍처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CLIP, DINO 등 거대 딥러닝 모델을 활용해서 탐지의 일반화 성능을 높이고, 추가로 크고 똑똑한 모델이 화질이 나쁜 모델을 먼저 학습한 뒤 그 내용을 작은 모델에 전달하는 지식 증류(Knowledge Distillation) 기법을 활용해 다양한 환경, 특히 저화질이나, 압축된 딥페이크를 탐지할 수 있는 연구를 수행 중입니다. 제가 세계 최초로 공개한 멀티모달 딥페이크 데이터셋(FakeAVCeleb)*을 전 세계 많은 연구자가 활용하는 등의 성과가 났습니다. 또한, 지난 2025년 10월 세계적인 컴퓨터 비전 학술대회인 IEEE ICCV에서 열린 딥페이크 탐지 챌린지에서 우리 팀이 전 세계 2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네요. * 멀티모달 딥페이크 데이터셋(FakeAVCeleb): 음성과 영상을 동시에 조작한 데이터를 포함해, 보다 현실적인 딥페이크 공격을 탐지하기 위한 핵심 자료 장기간 축적해 온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국내 딥페이크 탐지 기술 분야에서는 우리 연구팀이 최고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 성과와 더불어 딥페이크의 악용을 방지하고 사회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자 한 노력들이 높이 평가되어 이번 장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교수님 연구팀은 연구에 그치지 않고 국가경찰청 등 다양한 기관과 협력하며 딥페이크 해결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협업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낸 성과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과거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삼성SDS, 경찰청, 대검찰청과 공동연구를 수행하였고요. 현재는 경찰청, 그리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도 협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찰청에서 수사관이 실제 수사에 적용할 수 있도록 정확도는 물론 활용도까지 높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은 100% 국산 기술이며 성균관대에서 개발한 이미지/영상 딥페이크 탐지 기법이라고 자부합니다. 나아가 경찰청과 주기적인 미팅을 통해, 구체적인 수사에서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어떻게 실질적인 도움을 더 드릴 수 있을지 꾸준히 모델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국내 경찰청뿐만 아니라, 독일 뒤셀도르프 경찰청과도 협력을 진행하고 있으며, 저희가 만들 탐지 모델을 API화 하여 독일 경찰청에서도 현재 테스트 및 활용 중입니다. 또한,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맞아 현재 중앙선관위와 딥페이크 악용을 사전에 막을 수 있도록 협력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처럼 저희가 만든 탐지 기술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 있어 개인적으로도 뜻깊습니다. | 딥페이크처럼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분야를 연구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마주한 난관과 이를 어떻게 극복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AI 기술이 정말 빠르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생성형 AI 기술이 딥페이크에 접목되어 많이 악용되고 있습니다. 즉, 학습 데이터에서 사용되지 않은 새로운 딥페이크 기법이 나올 경우, 기존의 모델은 성능이 아주 크게 떨어지게 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데이터를 수집하고 모델을 학습하고,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과정이 난관이고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머신러닝에서 활용되는 Continual Learning, Domain Adaptation Method, 그리고 다양한 Data Augmentation 기법 및 고성능 얼굴인식 기법을 적용해서 탐지 성능을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생성형 AI가 만든 이미지나 음성이 특정 주파수 영역에 반복적인 패턴을 가지고 있는 경향을 활용해 탐지 성능을 지속적으로 높이도록 모델을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예측하기 어려운 실세계에서의 딥페이크에도 높은 성능을 보여주는 탐지 기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저와 우리 연구실에서는 앞에서의 기술들을 활용하여 현실에서 악용되는 딥페이크를 탐지하는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 교수님의 이력 중에 ‘불멸의 6·25전쟁 영웅, 청년으로 돌아오다 특별 사진전’ 참여가 인상 깊었습니다. 해당 전시에 참여하게 되신 계기와 연구자 개인으로서 이 프로젝트가 지닌 의미는 무엇이었나요? ▲ AI 얼굴 복원기술(GFP-GAN) 및 안면 복원(Face Restoration)을 활용해 복원된 김두만 장군의 사진, 출처= 국가보훈처 우연히 국가보훈부에서 6.25 종전 70주년을 맞아 훼손되고 빛바랜 6.25 영웅들의 사진을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복원할 수 있는지 문의를 주셨어요. 너무나 뜻깊은 일이라 학생들과 기쁘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연구자로서 저희가 개발한 기술들이 나라를 위해 숭고하게 목숨을 바치신 영웅들의 노고 및 희생에 조금이나마 답할 기회가 되어서 너무나 기쁘게 진행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또한, 복원한 사진이 아래와 같이 유족에게도 큰 기쁨을 드릴 수 있어서 더욱 보람이 컸던 것 같습니다. -당시 복원된 사진 속 6.25 영웅 유족의 말- “소프트웨어학과·인공지능학과 학생 여러분 엄청나게 감사합니다. 특히, 우사이먼 성일 교수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함을 전하려 했으나 찾지 못해 이곳이라도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감사의 인사말을 전합니다. (중략) 지난 3월 보훈부와 성균관대학 소프트웨어학과·인공지능학과 학생들이 피땀 흘려 이 세상에 단 한 장 남은 사진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이쁘고 아름답게 복원작업을 해주셨습니다. 70년 전 아버지의 색 바랜 육사 8기생 생도 시절 사진이 단 한 장 남아 있었는데, 그것도 육사 민원실에 요청해 간신히 생도 시절 사진이 한 장 남아 있어 집으로 보내준 것입니다. 전사하신 아버님의 사진 한 장은 돈으로나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 1호입니다. 그런 사진을 자연스러운 컬러 사진으로 너무나도 생동감 있게 복원작업을 해 주셔서 말도 못 하게 감사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성균관대학, 고생하신 학생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움과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해당 프로젝트 관련 기사 보러 가기 | 교수님의 연구를 살펴보면 기술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는 공통된 의의가 느껴집니다. 연구 주제를 결정하실 때 가장 우선시하는 기준이나 가치가 무엇일까요? 제가 연구 주제를 결정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해당 기술이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 2. 의미 있는, 그리고 진정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기술인가? 3. 나를 포함한 연구원들이 즐겁게 연구할 수 있는 주제인가? 4. 이전에 많이 연구가 되지 않은 새로운 분야인가? 5. 앞으로 꼭 필요한 기술인가? 학문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근본적으로 사람을 도와주고 나아가 사회 전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간적, 사회적 가치가 변동되고,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을 현재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인공지능의 폐해 및 위험성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걱정이 많이 됩니다. 따라서 저는 연구자 및 기술자로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으면서도 인간적 가치를 포괄할 수 있는 인공지능 연구 및 개발에 큰 관심을 가지고 해당 연구를 준비합니다. | 이전에 NASA 제트추진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신 경험도 있으십니다. 이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현재 연구에 영향을 준 경험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2005년 참여한 화성 정찰 궤도선(MRO)* 연구가 저의 첫 번째 스페이스 미션 프로젝트였습니다. 저는 화성에서 촬영한 사진 파일을 지구로 전송하는 CFDP file transfer protocol과 DTN (Delay-Tolerant Networking)을 연구 및 개발하였는데요. 제가 개발에 참여한 인공위성이 화성에 갔다는 사실과, 설계 수명을 훨씬 넘긴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것 같습니다. * 화성 정찰 궤도선(MRO): 화성에 물이 존재하는지 탐색하고 화성 탐사 임무를 지원하기 위해 설계된 우주선으로, 화성 착륙선의 안전한 착륙지 선정 및 화성 표면에서 물이 흐르던 추가 증거 등을 제공함. ▲ 화성정찰궤도선 그래픽 이미지. 출처= NASA 물질적 가치를 떠나 과학적으로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사에서 정말로 뛰어난 엔지니어, 과학자, 기술자들과 연구할 수 있는 것 또한 큰 영광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일하며 여러 명이 함께 과제를 수행할 때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현재 저는 나사에서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그곳에서 배운 협업 방법, 조화의 방식, 연구 문제에 대한 접근, 연구 논문 및 제안서 작성법 등은 지금의 저에게 다방면으로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은 연구 분야나, 현재 관심을 갖고 준비 중인 연구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공지능 보안, 그리고 앞서 말했듯 인간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인공지능 기술, 새로운 인공지능 파운데이션 모델을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 연구 활동 외에도 교육자이자 연구실 책임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연구실’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좋은 연구실은 모든 참여 연구원이 인간적으로나 일로나 맡은 업무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약속이기에 어디서나 정말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떤 조직이든 1명으로는 그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개인들이 모여 시너지를 내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구성원끼리 서로 존중과 배려를 해야 하고, 이기적이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학생들이 공부 및 연구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과정이 쉽지 않기에, 제가 본 바에 의하면 똑똑한 학생이 성공하는 게 아니라 끈기가 있고 열심히 하는 학생이 연구실 생활 및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책임감 있고 끈기 있는 학생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성과가 잘 나오고 저절로 좋은 연구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학생들과 사진 복원 중인 우사이먼성일 교수, 출처= 전자신문 | 마지막으로 교수님의 연구실인 DASH Lab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단순히 지금 관심도가 높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인공지능기술(예: LLM의 성능을 어떻게 높일까?) 을 벗어나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정말로 의미 있는 인공지능 기술(예: LLM의 문제점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해결할까?) 을 연구 및 개발하고 싶은 학생들은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앞서 말했듯 좋은 연구실을 만들기에 필요한 착하고 책임감 있게 열심히 연구하실 학생분들이 지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사이먼 교수의 DASH Lab 연구실 탐방 기사 읽으러 가기 >DASH Lab 홈페이지
- No. 95
- 2026-01-16
- 6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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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융합의과학원 김항래
신체의 감각을 조율하다
면역은 우리 몸이 세계와 형성하는 경계를 지키는 가장 섬세한 감각이다. 지난 9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우리 대학 삼성융합의과학원(SAIHST) 융합의과학과에 부임한 김항래 교수는 이 경계를 더욱 정밀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연구를 통해 현대 면역학이 힘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다시 한번 조명했다. 이번 호에서는 김항래 교수가 축적해 온 깊은 탐구, 그리고 면역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하는 길 위에서 마주한 의미 있는 우연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 융합의과학과 및 삼성서울병원 유전자종합연구소에 소속된 교수 김항래입니다. 저의 주요 관심 연구 분야는 memory CD8+ T 세포의 표현형 및 기능을 분석하고 이와 관련된 기전을 연구하여 기능을 회복시키거나 강화하는 요인을 탐색하는 것이며, 환자 치료 중심의 면역치료 연구를 확장하고자 2025년 9월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우리 대학 삼성융합의과학원으로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 김항래 교수 | 학부 때는 수의학과에 재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의학 대신 의학을 연구하시기로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네, 저는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했습니다. 다른 학과와는 달리 수의학과는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고등학교처럼 강의와 실습을 진행하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학생이 별도로 연구에 대해 알아보고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학부 1학년생이던 1991년, 패치 클램프(patch clamp)* 기술 개발로 에르빈 네어와 베르트 자크만 두 분이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생리학을 접하기 전이었지만 전기생리학의 원리에 매력을 느껴 앞으로 이를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패치 클램프(patch clamp): 세포에 미세한 전극을 붙여 이온 채널의 전류 흐름을 측정하는 실험 기법 그러다 면역학을 배우고 나서 그보다 훨씬 복잡한 세계에 더욱 강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1993년 《사이언스(Science)》에 실린, 천연두 바이러스 잔여 재고를 파괴할 것인지에 대한 상반된 주장을 담은 두 편의 논문이 제 연구 방향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논쟁의 계기가 된 천연두는 인류가 감염병에 대응하여 드물게 얻어낸 승리의 기록이자 '행복한 고민'이라 불릴 만합니다. 또한, 우리가 사용하는 '백신(vaccine)'이라는 단어의 기원 역시 천연두 바이러스 백신주(vaccinia virus)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면역학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수업에서 접했던 이 논문이 면역학을 공부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어 추후 대학원에서 연구자의 길을 고민하던 중 의과대학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The Remaining Stocks of Smallpox Virus Should Be Destroyed』(사이언스, 1993), 『Why the Smallpox Virus Stocks Should Not Be Destroyed』(사이언스, 1993) | 교수님의 주 연구 분야인 면역학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면역학을 연구 방법론이나 질문을 해결하는 접근 방식에 따라 세포면역학과 분자면역학으로 나눈다면, 제 연구 분야는 세포면역학에 가깝습니다. 연구의 주요 대상 세포는 세포독성 T 세포로 알려진 CD8+ T 세포입니다. 저는 암, 감염, 자가면역질환 등의 질병 상태에 따라 이 CD8+ T 세포의 기능이 어떻게 영향받는지 분석하고, 그 기능을 개선할 방안을 제안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장기적인 방어 능력에 핵심적인 기억 T 세포(memory T cell)로의 분화와 관련된 요인들을 탐색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구 초기에는 사람의 T 세포를 대상으로 시작했으며, 현재는 기전 연구 및 치료를 목적으로 쥐를 이용한 동물 모델에서의 연구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 교수님의 연구에서는 면역치료를 이해하는 데에 T 세포를 중심으로 연구의 축이 세워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을 시도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면역세포 치료제에는 T 세포 외에도 NK 세포, 대식세포 등이 활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T 세포는 면역세포 치료 분야에서 가장 오랫동안 연구되어 면역치료의 기초 생물학과 임상적인 시도가 많이 축적된 세포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항원 인식, 신호 전달, 면역학적 시냅스 형성까지 분자 수준에서 정밀하게 해석이 가능한 유일한 면역세포입니다. 이렇게 견고하게 축적된 지식은 새로운 기술이나 개념을 검증하는 데 있어 가장 견고한 기준점을 제공하며, 연구 결과를 임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예측력을 높여줍니다. 더불어 T 세포는 CAR, TCR, 면역관문(immune checkpoint) 등의 공학적인 개입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져 온 플랫폼입니다. 따라서 면역 반응의 원리를 밝히는 동시에 이를 치료 전략으로 확장하기에 가장 적합합니다. 결론적으로 T 세포를 중심으로 한 접근은 특정 세포에 국한된 선택이 아니라, 면역치료 전반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검증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최근 연구 중 FRET 센서를 이용해서 최적화된 CAR 세포를 선별해 내는 연구가 인상 깊었습니다. 해당 연구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 연구는 CAR-T 세포의 성능을 평가할 때 암 항원에 얼마나 강하게 결합하는지보다 면역세포가 암세포와 얼마나 안정적으로 결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실시간으로 증명한 연구입니다. 이를 위해 성지혜 교수(KIST, 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형광 센서 기술, 이창한 교수(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항체 개발 연구, 그리고 장미희 박사(KIST)의 CAR-NK 연구가 결합한 공동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우리 연구팀은 FRET(형광 공명 에너지 전달) 센서를 활용해 면역세포가 암세포와 결합한 직후 내부 신호가 얼마나 잘 조작되는지를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가장 강하게 결합하는 CAR보다 중간 수준의 결합력을 가진 CAR이 항원과 더 안정적인 결합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실제 면역세포 기능도 더 우수함을 규명했습니다. 이는 CAR-T 설계의 기준을 단순히 결합력 중심에서 기능적인 면역학적 시냅스 구조 형성과 신호 전달 중심으로 전환해야 함을 제시한 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 면역에 관한 연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현시점, 면역치료 연구에서 앞으로 가장 중요해질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현재 면역치료 연구의 동향은 “더 강한 면역반응”보다는 “더 정밀하고 예측할 수 있는 면역조절”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명확하게 바뀌고 있으며, 이는 저희 연구를 포함한 최근 기초 및 임상 연구 결과들에 따라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하나의 면역세포에 국한된 분석을 넘어 면역세포 간 상호작용과 공간적 조직이 치료 반응에 미치는 영향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면역 반응이 어디에서 어떤 구조로 일어나는가’가 치료 결과를 좌우한다는 근거들이 제시되고 있으며, 이는 최근 면역치료 연구 전반에서 공통으로 강조되는 흐름입니다. 임상적으로는 단일 면역치료 전략의 한계도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일부 환자에게서는 단일 면역치료가 탁월한 효과를 보이지만, 다수의 환자에게서는 충분한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면역치료를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 표적 치료 등의 다른 전략과 병용하는 전략이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또한 동일한 치료라도 환자마다 반응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면역 반응을 사전에 예측하는 접근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면역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플랫폼 개발과 같은 핵심 과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현재 면역치료 연구자들은 면역을 ‘더 세게 켜는’ 기술에서 벗어나 면역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조율하는’ 시스템 과학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는 기초 면역학 발견과 임상 사례들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방향이라고 판단합니다. | 연구를 진행하시면서 있었던 뜻깊거나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으신가요? 연구하면서 가장 뜻깊고 기억에 남는 순간은 완벽하게 계획된 실험이 아닌 예상과 어긋난 데이터로부터 새로운 질문이 시작될 때입니다. 연구의 진정한 매력은 내가 얻은 데이터에서 출발한 작은 ‘발견’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고, 지식의 공백을 채워 나가며 때로는 기존에 널리 받아들여지던 신념이나 논리에 도전할 수 있을 때 느껴집니다.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는 한 연구 역시 실험 과정에서 처음에는 ‘잘못된 결과’라고 여겼던 데이터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결과를 단순히 폐기하지 않고 남아 있는 사실을 근거로 재해석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면역세포가 염증 조직이나 종양에 침투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기전과 시각을 제시하는 연구로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은 연구에서 우연(serendipity)과 집요한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 연구에 관한 결과는 추후에 여러분과 논문으로 공유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우리 대학 융합의과학원에서의 김항래 교수님의 모습 또한 궁금합니다. 2025년 9월, 교수로 부임하시면서 진행하신 연구나 수업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융합의과학원에는 그동안 뵙지 못했던 전공 분야의 교수님들이 계셔서 저의 연구를 확장할 좋은 기회가 많습니다. 현재는 이곳으로 옮겨와 면역치료를 위한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배우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수업의 경우에는 올해 유전자종합연구소에서 면역학 개론에 해당하는 강의를 진행했으며, 대학원에서는 2026년 1학기에 ‘면역학의 이해’라는 과목을 개설할 예정입니다. 이 수업은 교과서 중심으로 진행하여 면역학 전공 대학원생이나 관심 있는 학생들이 핵심 개념을 확실히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앞으로 대학원에서 필요한 수업을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 앞으로 교육자로서, 또는 연구자로서 이루고 싶으신 목표가 있으신가요? 어떤 교육자, 어떤 연구자가 되어야 하는지 늘 고민하고 있으며, 이 질문에 답한 후에도 제 생각은 계속해서 변화해 나갈 것입니다. 천연두 백신의 성공 역사에서 시작된 면역학 공부를 통해 연구자가 되었고, 교수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우연히 교육자의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교육자보다는 멘토 또는 선배 연구자라는 호칭이 저에게는 더 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앞으로는 환자의 치료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연구에서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학우 및 원우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Serendipity'란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것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아서 콘버그(Arthur Kornberg)는 과학에서의 발견을 두고, 우연은 자주 등장하지만, 그것을 발견으로 만드는 것은 준비된 사고와 집요한 탐구라고 강조했습니다. 즉, 세렌디피티는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체계적인 지식을 갖추고 충분히 고민하고 질문해 온 사람에게만 의미를 갖는 우연이라는 뜻입니다. ▲ upyourimpact.com, by Chuck Frey 성균관대학교 학우 및 원우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연구 과정에서 당장의 성과나 정답에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는 점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기본을 성실히 쌓으며, 스스로 던진 질문을 끝까지 붙드는 과정에서 우연은 반드시 의미 있는 발견으로 바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한, 좋은 동료가 되고 동료를 찾기를 바랍니다. 긴 연구의 여정 동안 좋은 동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탐구가 언젠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새로운 길을 열게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No. 94
- 2026-01-06
- 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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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국문학과 권인한
제9회 난정학술상 본상 수상
한국어문회에서 수여하는 난정학술상은 국어국문학 연구와 발전에 평생을 바치셨던 故 난정(蘭汀) 남광우(南廣祐) 선생의 뜻을 기리고, 국어국문학 분야에서 우수한 학문적 성과를 낸 연구자들을 지원하고 격려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2016년 제1회 수상자를 배출한 이래, 지난해 8회까지 본상과 우수상 각각 두 명의 수상자를 선정하여 매년 난정 선생의 생일인 4월 28일에 시상식을 열어 왔다. 그리고 국어학 분야 수상자를 내는 올해 제9회 난정학술상 본상에는 우리 대학 국어국문학과 권인한 교수가 선정되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어문회는 권인한 교수를 본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국어 한자음 연구와 차자 표기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다수의 주옥같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하는 등 탁월한 연구 성과를 거두고, 여러 학회의 학회장을 두루 거치면서 국어국문학 연구자를 이끌어 주었다”는 점을 들어 높이 평가했다. 권인한 교수가 제9회 난정학술상 본상을 수상하며 국어학 연구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기는 순간을 함께해 보자. | 안녕하세요, 교수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성균웹진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2002년부터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권인한입니다. 이제 정년이 몇 해 남지 않아 여러모로 먼발치로 물러나 있습니다만, 뜻밖에 성균웹진에서 조명받을 수 있게 되어서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의 전공은 국어음운사 - 특히 한국한자음 역사인데요. 금석문, 목간, 구결 등 출토 문자 자료에 대한 판독 및 해석을 통해 고대 한국한자음의 재구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한국목간학회 회장직도 함께 맡고 있습니다. 무미건조한 국어학자의 이야기가 성균웹진 독자 여러분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권인한 교수 | 지난 4월, ‘제9회 난정학술상 본상’을 수상하셨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는 지금, 교수님의 올해 연구 여정에 깊게 새겨진 순간일 듯한데요. 이번 수상이 교수님께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당시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제9회 난정학술상 본상을 수상하면서 떠오른 감정은 영광스러움과 감사함, 그리고 행복함이었습니다. 난정학술상은 우리 어문 연구와 한자 교육 진흥에 평생을 몸 바쳐 열과 성으로 크게 공헌하신 난정(蘭汀) 남광우(南廣祐) 선생님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인데, 저의 수상작 『고대 한국한자음의 신연구』(역락출판사, 2024)가 난정 선생님의 학문과 맞닿아 있어서 동일 전공의 후학이 이 큰 상을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무척 영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부족한 저에게 난정상 본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신 한국어문회(이사장 남기탁 교수)와 난정학술상 심사위원회 여러 선생님들께 올리는 감사함이 컸습니다. 덧붙여 평생의 숙원을 이룬 행복감이 찾아왔습니다. 공부 외에 별다른 재주가 없었던 제가 40대 이후 30여 년간 금석문, 목간, 그리고 신라사경 등의 1차 문자 자료들을 만나 한자음 관련 증거들을 모으고 분석하여 그 결실을 이전과는 차별성을 지니는 ‘신연구’라는 이름으로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저 자신이 참으로 복 받은 행운아라는 행복감에 젖을 수 있었습니다. | 교수님께서 주력하시는 연구 분야 - 고대 한국한자음 연구, 출토 문자, 구결 등 - 에 대해 성균웹진 독자분들께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훈민정음으로 우리말을 적기 이전에 우리 조상들은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서 인명, 지명, 관직명 등을 적은 고유명사 표기, 관공서 문서를 적은 이두(吏讀) 표기, 불경 등의 경전을 학습한 구결(口訣) 표기, 그리고 우리의 노래를 적은 향찰(鄕札) 표기 등 각종 차자표기법을 발달시켜 왔습니다. 고대 한국한자음의 연구는 이러한 차자표기법의 절반 이상을 규명해 내는 학문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고유명사·이두·구결·향찰 표기자의 절반 이상이 한자의 음을 빌려 쓴 글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한국한자음 연구는 이 차자표기자들이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의 한자음을 기반으로 한 것인지를 규명해 내는 학문입니다. 제가 금석문, 목간, 신라사경 등의 자료에 집중한 것은, 당대 우리 조상들이 남긴 1차 문자 자료들인 이들을 통해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고대한국어 시기 한자음의 실체에 다가설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서였습니다. 선배 학자들이 고대 한국한자음에 접근하고자 이용한 자료는 대부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고유명사 표기들이었는데, 이들은 고려시대에 편찬된 2차 역사서들에 실린 표기들로서 여러 가지 한계점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6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는 신라 금석문, 목간, 신라 사경류(寫經類), 고려시대 불서류(佛書類)에 이르는 1차 문자 자료들을 살펴보게 되었고, 여기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학계에 보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고대한국어와 문자문화 연구에 오랜 시간을 할애해 오셨어요. 처음 관심을 갖고 깊이 파고들게 되신 순간은 언제였나요? 이 분야에 대한 흥미가 학부 시절부터 이어져 온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의 학부 시절이나 석사과정 시절의 최대 관심사는 현대한국어 음운 연구였습니다. 그러다가 박사과정을 수료할 즈음부터 한국한자음 연구에 뜻을 두기 시작하였고, 그 후 30여 년간을 이 작업에 몰두하였으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자음 연구에 들인 첫 발걸음은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인 1991년 1학기에 제출한 「계림유사 “고려방언” 자료의 성조 재구를 위한 기초적 조사」라는 한 편의 기말 보고서였습니다. 그 보고서를 지도교수이신 故 김완진(金完鎭) 선생께서 그해 어느 학회 발표문에 인용하면서 저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아주신 때를 기점으로 이 방면의 연구에 깊이 파고들게 되었습니다. 그 후 2002년 성대에 부임한 해에 구결 학회의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구결 자료를 접하게 되었고, 2007년 한국목간학회 창립 회원으로서 금석문, 목간 자료를 함께 다루면서 1차 문자자료를 통한 고대 한국한자음 연구의 가능성을 발견하였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로 2009년 1월 이후 일본 나라시 소재의 동대사(東大寺) 도서관에서 신라사경인 『대방광불화엄경 권12~20』(740년대 추정) 속에 담긴 수많은 신라인의 각필(角筆) 문자들을 접하면서 신라한자음, 나아가 고대 한국한자음 연구를 본격적으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 이번 난정학술상 본상 수상과 특히 맞닿아 있다고 소개하신 『고대 한국한자음의 신연구』(2024)의 집필 과정과 내용에 대해 자세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권인한, 『고대 한국한자음의 신연구』(역락출판사, 2024)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저를 난정학술상 본상 수상으로 이끈 것은 『고대 한국한자음의 신연구』(역락출판사, 2024)입니다. 이 책은 앞서 말씀드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저의 이전 졸작인 『광개토왕비문 신연구』(박문사, 2015) 발간 이후인 2016년 초엽부터 본격적인 집필 기획에 들어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몇 편의 시험적인 논문을 발표한 후, 이를 바탕으로 한국연구재단(KRF)의 2019년도 중견연구자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2019. 7. 1.~2022. 12. 31.) 전문 학술지에 7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들을 하나의 체재로 통일하는 동시에, 출토 문자 자료를 통해서 본 “고대 한국한자음 기층음의 형성과 전개” 부분과 연구 자료 중 자음주(字音注)들을 중심으로 성모·운모·성조별로 체계성 여부를 살펴본 “고대 한국한자음의 체계성 검증” 부분을 새로 집필해서 최종 원고로 완성하여(2022. 8. ~ 2024. 1.) 출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책의 주요 연구 자료는 신라 금석문(9종 12건, 6세기),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245점, 6세기 중·후반), 일본승 中算이 찬한 『묘법연화경석문』(976)에 실려 전하는 신라의 원측, 순경, 경흥, 태현사의 한자 주석(7~8세기), 오타니(大谷)대학 소장의 元曉 찬 『판비량론』 단간 속에 보이는 성점(聲點), 범패부(梵唄符) 등 각필 한자음 자료(733년 이전), 동대사도서관 소장 『대방광불화엄경』 권12~20에 보이는 각종 각필 한자음 자료(740년대), 사산비명 등 최치원의 협주, 비명시 압운 등의 한자음 자료(9세기 말~10세기 초),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8·61·66 등 고려시대 불서류에서 찾을 수 있는 한자음 자료(11~13세기 초) 등 6세기에서 13세기 초에 이르는 한자음 관련 자료들을 조사하여 분석한 것입니다. 연구 결과로 제시한 고대 한국한자음의 특징을 11가지로 제시하였는데요. 그중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한국한자음의 /-ㄹ/ 종성의 시작이 6세기 중·후반으로 소급된다는 점, 상성과 거성이 혼동되는 한국한자음의 특징이 8세기 초반에까지 소급된다는 점, 어두에 /ㄹ/이 올 수 없는 두음법칙의 시작이 3세기 『삼국지』 고유명사 표기들에까지 소급되고, 5세기 『광개토왕비문』을 거쳐 13세기에 이르기까지 굳건하게 유지되었다는 점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목간·금석문·구결 등 출토 문자 자료를 다루실 때 크게 다가오는 난점이 있으신가요? 목간과 금석문의 경우는 글자의 판독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울진 봉평리 신라비처럼 논이나 도랑 등 비석이 본래 세워진 위치가 아닌 곳에서 부분적으로 훼손된 채로 발견되었을 때 손상된 문자의 판독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목간의 경우도 묵흔이 잘 남아 있지 않았거나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행서나 초서로 쓰인 부분은 판독상의 어려움이 가중됩니다. 가장 큰 어려움이 따르는 자료는 각필로 쓰인 신라시대 구결 자료입니다. 1,000년이 넘는 시간적 간극으로 인한 각필 흔적의 손상도 문제이려니와, 각필 자료의 조사를 위해 각필 스코프라는 장치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빛의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해당 글자가 눈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있어서 판독상의 어려움을 겪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 동대사도서관 화엄경 각필 조사 | 국립국어원이 창립되던 1991년부터, 학예연구사로 5년여간 근무하셨어요. 국어원에서 계시던 시절의 이야기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991년 1월 10일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이 창립될 때부터 1996년 2월까지, 5년여 동안 학예연구사로 근무했습니다. 처음에 제가 맡은 연구 업무는 북한어 연구였습니다. 북한의 신문·잡지 등을 살펴보고, 북한의 국어사전들을 분석하는 것이 주 업무였는데요. 1992년에 『조선말대사전』이 출간되었을 때, 표제어의 발음에 표시된 악센트 높낮이 숫자를 분석한 보고서를 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1992년부터 지금의 『표준국어대사전』 편찬 사업에도 참여하여 주로 각 표제어의 발음 표시에 대한 원칙과 실제에 대한 지침을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96년 3월부터는 울산대학교에 부임하여서, 끝까지 이 작업을 마무리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의 5년은, 남북한 언어 차이를 조사·분석하고, 『표준국어대사전』의 편찬 사업에 조금이나마 기여한 바가 있었다고 사료되기에 저의 30대 초반에 보낸 보람찬 시절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되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2년 3월 국어국문학과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 학과에는 저를 포함하여 7분의 교수만 계셨는데, 제 바로 윗분이 박양규 교수님으로 저와의 나이 차가 15년이 될 만큼 다들 정년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분들이었습니다. 사학과의 어느 선생님이 말씀하셨듯 노인대학의 사무장 역할로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일찍 학과장 역할도 수행하였는데, 매년 가을 문학기행 때에는 안동이 고향이신 김시업 선생님을 모시고 안동 일원을 여행하면서 국문과 학부·대학원생들과의 친목을 도모했던 기억이 새록합니다. 그러다가 2004년부터 한 분 한 분 정년을 맞으시기 시작하여 과세(科勢)가 줄어들기도 하였습니다만, 2005년부터 노명희, 천정환 교수를 비롯하여 많은 뛰어난 신진 교수들을 새 식구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제가 처음 부임해 왔을 때보다 두 배 가까운 열세 분의 교수를 모신 학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문과대학 학장직을 수행할 때(2017~2018) 학교 당국의 협조하에 대학원에 한국어교육학과를 개설하게 되었는데 지금의 학과 성장세에 조금은 기여한 바가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과는 교수들 사이, 교수와 학생들 사이 관계가 매우 화목하다는 점이 널리 자랑할 만한 특징입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교수들끼리 크게 다투어 본 적도 없고, 전공 간 이견이 생기더라도 학과 회의를 통해 원만한 해결책을 모색해 왔으며, 매 학기 초 교수-학생 간 상견례를 통해 학생들과의 친교도 도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화합된 국어국문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 데에는 선배 교수님들의 가르침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감사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국어국문학과 문학기행, 2012년 가을 임진각 | 고대 한국어, 국어사에 관심이 있는 학부생에게 어떤 준비를 해 보라고 조언해 주시겠어요? <국어의 역사> 강의 시간에 지금까지 소개한 문자 자료들을 화면에 띄워가며 수강생들의 흥미를 끌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고대 한국어 연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발견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줍니다. 첫째, 고대 한국어 연구에 필요한 자료는 예외 없이 한자,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글자의 판독에서 해석에 이르는 기초 작업을 위해서는 한자, 한문에 대한 기초 지식 연마에 힘쓰라고 말합니다. 여러 가지 서체를 모아놓은 서체 자전은 물론, 불경 등의 자료를 해석하려면 한글대장경을 비롯한 기존 해석 자료를 충분히 섭렵해야 합니다. 또 자신의 해석 능력 향상을 위해서 한문 문법서 공부도 게을리하지 말 것을 주문합니다. 둘째, 신라~고려시대에 이르는 구결 자료의 연구를 위해서는 구결자에 대한 학습도 필요합니다. 구결자는 대부분 한자의 획 일부를 따온 생획자(省劃字)들이므로, 해당 구결자가 어느 한자에서 온 것인지를 알아야 해당 한자의 음과 훈을 적용하여 구결의 독법을 세울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구결문의 해석에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기존에 발표된 선배 학자들의 논저를 공부하면서 어느 점들이 문제인지를 파악하여 자신만의 연구 주제를 정하고, 이를 자신만의 학문 체계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많이 보고, 읽고, 익히는 과정에서 학문적 성장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 국어국문학과에는 현대문학 5분, 고전문학 3분, 국어학 3분, 한국어교육학 2분 등 한국 최고 실력의 교수진이 여러분들을 학문의 길로 이끌고자 기다리고 있습니다. 각자의 관심 영역에 맞는 교수님들과 만나 적극적인 질의와 응답을 통하여 학문에 입문해 보십시오. 학문의 길뿐 아니라 교사, 언론인, 관료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사회인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학생들도 우리 교수진이 인생 선배로서 건네는 조언을 통하여 모두의 꿈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진로를 택하든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청년다운 크나큰 도전적 자세입니다. 여러 난관을 뚫고 전진하기 바랍니다. 처음에 가졌던 문제의식을 유지하여 노력하다 보면 여러분들 앞에 달콤한 성공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끝까지 파이팅! 하시기 바랍니다.
- No. 93
- 2025-12-23
- 4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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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특별협의지위 NGO 사무국장 김도헌 동문(경제 18)
자신만의 서사를 통해 이루는 꿈
스스로가 특별하다고 여기지 못하는 순간들조차 각자의 서사가 된다. 일상 속에서 조용히 축적된 서사가 곧 꿈을 이룰 수 있는 토대가 되어준다. 이번 인물포커스는 6년 동안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지위 NGO 사무국장으로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쌓아온 김도헌 동문 인터뷰를 통해 공동체의 회복과 안녕을 위해 노력하는 NGO의 서사를 소개한다. | 안녕하세요, 독자분들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성균웹진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대 경제학과 18학번으로 지난여름 갓 졸업한, 그리고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지위 NGO인 International Law Enforcement Federation (ILEF)에서 6년째 사무국장으로 재직 중인 김도헌이라고 합니다. 성균관대 동문으로서 성균웹진 인물포커스에서 조명받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특권인 만큼 매우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저의 이야기가 독자분들께 흥미롭게 와닿기를 소망합니다. | 6년 동안 NGO의 사무국장으로 재직 중이신데, 현재 활동하고 계신 단체 NGO에 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 단체는 미국 뉴저지에서 2003년에 설립되어 2011년부터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의 특별협의지위를 보유해 온 국제 NGO입니다. 안전하고 공정한 공동체 조성에 이바지하겠다는 기치 아래, 저희 ILEF는 국제 법 집행 리더십 강화, 시민 보호, 평화 구축을 위한 교육, 지역 안전 이니셔티브, 국제 협력 등 다방면의 사업에 주력해 왔습니다. 특히 2023년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와 협력하는 글로벌 NGO 연대체인 The Alliance of NGOs on Crime Prevention and Criminal Justice에 가입하여 조직범죄 예방 및 근절을 위한 실천적 대안 모색에 적극 이바지해 오고 있습니다. ILEF의 두드러지는 점은 한국인을 중심으로 설립된 NGO라는 점입니다. 설립 당시 USAALEF (United States Asian American Law Enforcement Federation)라는 단체명으로 미국 내 아시아인을 비롯한 소수민족의 권익 신장을 주된 목표로 활동해 왔습니다. 2017년을 기점으로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하고, 국제 분쟁 속 인권 침해에 대해 국제인도법 집행력 강화를 도모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 ECOSOC와 NGO 등 생소한 단어가 많은데,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우선 ECOSOC(경제사회이사회)은 경제·사회·개발·인권 등 전 지구적 이슈를 다루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촉진하는 유엔 기구입니다. 이 ECOSOC이 NGO에게 부여하는 공식적 지위가 바로 협의 지위(Consultative Status)로, NGO가 유엔 체계 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됩니다. 협의 지위는 일반·특별·명부 등재 세 가지로 구분되며, 저희가 보유한 특별협의지위는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은 NGO에 주어집니다. 이를 통해 ECOSOC 및 산하 기구 회의 참석은 물론 서면 보고 제출과 발언이 가능하며, 저희 단체는 이러한 권한을 바탕으로 매년 UNODC 주관 Constructive Dialogue(회원국과 시민사회가 모여 협약 이행 상황과 과제를 논의하는 장)에 참여해 경험과 제언을 공유하며 국제 정책 형성에도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 경제학과를 졸업하셨는데, 전공과 현재의 진로가 어떤 식으로 연관되어 있을까요? 사실 저는 고3 때부터 가수를 꿈꿔왔습니다. 대학 진학 후 보컬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하며 가수의 꿈을 키워가던 중, 성대결절 진단을 받고 말았습니다. 가수 지망생에게 성대결절은 너무도 큰 시련이었으나,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호전되는 걸 알고 있었기에 두 달 간의 묵언수행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의 침묵은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 기간동안 가수가 아닌 다른 진로를 처음으로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소질과 적성을 고려했을 때, 저는 늘 국제적 쟁점 및 사회 이슈들에 관심이 많았고, 영미권 팟캐스트를 달고 살 정도로 영어를 좋아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어떤 가치를 위해 살고 싶은지 자문했을 때 공동체의 회복, 안녕과 번영이라는 확고한 답이 나왔습니다. 세 요소를 모두 충족하는 게 유엔 NGO였고, 단체들을 조사하던 중 미국 뉴저지에 근간을 두고 한인 중심으로 설립된 ILEF가 이색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당시 단체가 일종의 동면기에 있었으나 한미 간 가교이자 한국과 국제사회를 잇는 교두보로서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습니다. 이 플랫폼에 제가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모험심이 강하게 발동했고, 단체 측에서 저의 비전을 알아봐 주신 덕에 21살의 나이로 ILEF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니, 제 발자취는 늘 일관됐던 거 같습니다. 사람을 위한 노래로 기쁨과 위안을 주고자 가수를 꿈꿨고, 지금은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위한 여정에 있습니다. 목소리의 모양만 바뀌었을 뿐 그 안엔 늘 사람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진심이 있었습니다. | NGO가 비영리단체로 알고 있는데, 경제학도로서 배웠던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 있진 않나요? NGO는 말 그대로 이윤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공익을 추구합니다. 겉으로는 경제학의 이윤 극대화와 대조되는 듯 보이지만, 저는 두 영역이 상호 보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사회적 편익을 극대화하는 데 경제학적 사고는 NGO 활동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의 고전에서도 이런 맥락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흔히 『국부론』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만 알려졌지만, 사실 『도덕 감정론』에서는 인간의 공감 능력과 공동체적 배려를 강조했습니다. NGO의 역할은 바로 그 지점에 있습니다. 경제학이 이윤 극대화를 말한다면 NGO는 사회적 가치 극대화를 지향합니다. 공공선, 인권, 인도주의 같은 가치는 숫자로 환산하기 어렵지만 공동체를 지속시키는 데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NGO 활동이 경제학의 합리성과 효율성, 그리고 스미스가 말한 도덕 감정을 결합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 NGO 사무국장이 되신 과정도 궁금합니다. 무작정 패기 하나로 들이댔습니다. 저는 한국에 계신 단체 대표님을 찾아가 제가 이 단체를 위해 어떤 비전을 가졌는지 상세히 설명해 드렸습니다. 단체를 재정비하여 다시금 국제사회에 각인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저에게 확실한 권한을 주시면 그 비전을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원래도 도전 정신이 충만한 편이지만, 저 때는 다시 생각해도 정말 대담했던 거 같습니다. 회의가 끝날 즈음 대표님께서 마침 사무국장직이 비었다고 자리 제안을 해주셨을 때 두 귀를 의심했습니다. 사무국장이라는 직함에서 오는 중압감이 바위처럼 크게 다가왔지만, 인생 일대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제의를 수락했습니다. 요즘도 간혹 대표님과 그때 이야기를 하는데, 도대체 저의 어떤 점을 보고 그런 중책을 맡기셨는지 여쭤보면 “눈은 거짓말하지 않아. 난 너의 눈을 믿었어”라고 하십니다. 저의 가능성과 제가 만들어낼 ILEF의 변화를 믿어주신 대표님께는 항상 감사할 뿐입니다. | 현재 NGO의 주요 활동은 무엇이 있나요? 최근 저희 단체에 기념비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 단체가 지난 8월 12일, 유엔 제네바 사무소 Palais des Nations에서 설립 이래 최초로 고위급 국제 컨퍼런스를 단독 주최했습니다. 한국인을 중심으로 조직된 NGO가 유엔 제네바에서 단독으로 주최한 첫 국제회의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습니다. 회의는 「민간인 보호와 지역 안정: 중동에서의 인도주의 법, 위기 대응, 그리고 전략적 협력」을 주제로 여섯 개 세션이 진행됐습니다. ▲ ILEF 컨퍼런스 포스터 이 회의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2주년을 앞두고 심화하는 가자 지구 인도주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획됐습니다. 인도적 지원을 책임지는 NGO와 유엔 구호 기구들의 피해 또한 막심해지는 상황에서 저희가 직접 유엔에서 전문가들을 모아 실효적 해법을 모색하고자 했고, 그 과감하고 실험적인 도전이 결실을 본 자리였습니다. | 사무국장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을 것 같아요. 비슷한 진로를 희망하는 재학생분들께 조언 부탁드립니다. NGO는 증진하고 싶은 가치와 꺼지지 않는 사명감이 있어야 뿌리내릴 수 있는 분야입니다. 못지않게 중요한 건 인내심과 긍정의 자세입니다. NGO는 말 그대로 비정부 영역에 있는 만큼 즉각적인 성과를 내기 쉽지 않습니다. 국제 담론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형 NGO들도 있으나, 이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활동해도 자신들의 목소리가 현실에 유의미하게 반영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NGO 활동은 세상을 단번에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국가·지역·공동체에서 가능한 작은 목표부터 꾸준히 쌓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전 세계에 유엔 협의 지위를 가진 NGO가 무려 6,657개입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죠. 저희가 알고 있는 보편적 가치는 결국 각 단체가 자신들의 목표와 역할에 충실할 때 지탱된다고 생각합니다. | 사무국장으로서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단체의 역할과 영향력을 더 키워가는 것이 저와 ILEF의 장기적 목표입니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ILEF가 기존 국제 규범 담론의 참여자를 넘어 공론장의 구축자로 발돋움하고, NGO 특유의 유연성을 살려 각계 전문가들을 연결하는 교량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를 위해 ILEF 콘퍼런스를 정례화하여 하나의 브랜드로 정착시키고, 실질적 정책 해법을 도출하는 싱크 탱크로서 국제사회의 대응력 제고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사무국장으로서 또 기대되는 여정은 미국 대학원 진학입니다. 내년 가을 미국 유수 대학원의 공공정책 석사과정 입학을 목표로 준비 중이며, 꼭 합격해서 단체의 비전을 정교화해 줄 방법론적 도구들을 획득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쌓아 ILEF의 성장을 위한 밑거름을 다지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재학생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불과 지난달에 졸업한, 아직 졸업장이 따끈따끈한 선배로서 굳이 전하고픈 이야기가 하나 있다면, 자신만의 서사를 쌓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서사는 곧 정체성이며, 경험의 집적을 통해 생기는 후천적 지문입니다. 자신만의 서사를 보유한 사람은 어디를 가도 고유의 색채를 뽐내며 두각을 나타냅니다. 최대한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삶의 내공을 쌓으시길 강력히 권해드립니다. 저는 본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그리 내켜 하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강력한 권유로 1년간 영국 교환학생 생활을 하게 되었고, 현지 학생들과 치열하게 토론했던 당시의 경험이 해외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설령 당장의 성과와 무관해 보이더라도 가성비가 아닌 경험 그 자체를 추구하신다면, 그 모든 경험이 종국엔 대체 불가한 본인만의 서사를 만들어줄 것입니다. 성균관 학우들이 써 내려갈 아름다운 서사를 온 마음 다해 응원합니다.
- No. 92
- 202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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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학과 이우진 겸임교수
나 자신을 알라, ‘꼬마버스 타요’ 제작자
인생은 ‘나’라는 사람을 하염없이 알아가는 여정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비욘드에이’ 대표이사이자 성균관대 영상학과 겸임교수인 이우진 교수는 고등학생 시절에는 만화가를 꿈꿨다. 대학에 문을 두드릴 때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3년 후 운명처럼 개설된 영상학과에서 비로소 자신이 진정으로 몸담고 싶은 세상을 만난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새로운 막을 열었다. 그는 2002년 학부 졸업 후 아이코닉스의 콘텐츠개발팀장으로 15년간 근무하며 애니메이션 <태극천자문>, <뽀롱뽀롱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시리즈를 기획하고, <플라워링 하트>의 총감독으로 활약했다. 2020년에는 새로운 애니메이션 제작사 ‘비욘드에이’를 창업하여 <꼬마버스 타요>의 새로운 시리즈와 함께 SNS 중심 캐릭터 콘텐츠 <똥깡아지 메주>와 여아용 애니메이션 <트윙클! 매직 루나펫>, 청소년 대상 판타지 소설 <요괴탐정 강하나> 등을 제작하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 같은 이우진 교수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 <뽀롱뽀롱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 <똥깡아지 메주>, <요괴탐정 강하나> 애니메이션 회사 ‘비욘드에이’ 대표 이우진입니다. 여러분과 같이 성균관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영상학과에서 공부했고, 지금은 학교에서 애니메이션 기획을 가르치고 있어요. | 성균관대학교에서 학부 졸업을 하셨어요. 산업 현장에 계시다가, 어떤 계기로 모교 영상학과 교수로 돌아오게 되셨나요? 지금 제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 반응이 한결같은데요. “말도 안 된다” 해요. 저는 30년 전인 1995년에 노어노문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어, 일어 같은 어학과 책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해서 어문 계열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입학하고 나니 너무 어려운데, 배움에 흥미가 생기지 않아 많은 고민과 방황이 따랐습니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도 학교에 영상학과가 새로 생긴 거예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게 된 순간이었죠. 그렇게 2002년에 영상학과의 첫 졸업생이 된 이후로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에만 매진해 왔습니다.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을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저를 가르쳐 주셨던 안상혁 교수님께서 기회를 함께 만들어보자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얼떨결에 시작했던 일이 어느새 10년이 되었네요. 10년 동안 다양한 학생을 만나면서 계속해서 제가 배운 것들을 나누는 동시에, 여전히 애니메이션 제작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창업 초기부터 학교에서 가르친 친구들에게 방학을 이용해 현장실습 기회도 꾸준히 제공해 왔는데 그 친구들인 지금은 직원이 되어 함께 일하는 일도 생기고 있네요. | 성균관대 영상학과 졸업생으로서, 처음 강단에 서셨을 때 감회가 어떠셨나요? 학생으로서 바라본 학교와, 교수로서 다시 바라본 학교는 어떻게 달랐는지도 궁금합니다. 굉장히 많이 다른데요. 학생이었을 때는 아직은 아는 것보다 배워야 할 것이 많은 20대니까, 모르는 것투성이고 제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확인하기도 어려워서 항상 불안했어요. 또 제가 되고 싶었던 ‘애니메이션 기획자’가 당시에는 흔하지 않고 시작하기 어려운 분야다 보니 가르침 받을 기회가 많지 않아서 당황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영상학과에서 공부하면서 비슷한 꿈과 취향을 지닌 친구들을 만나 동고동락할 수 있었던 게 저에게 큰 힘이 됐습니다. 교수님들께 배우는 것도 물론 많았지만, 같은 꿈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 여러 작업을 함께하면서 ‘더 잘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커갔어요. 교수로서 학교에 다시 왔을 때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동안 외부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으며 제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됐고, 그중에서 앞으로 어떤 것을 더 발전시켜야 할지도 정리된 상태였습니다. 이런 것들을 제가 방황했던 학생 시절에 알았다면, 하는 생각과 지금의 학생들이 저처럼 헤매질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학생들이 스스로에 대해 탐구할 기회를 많이 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바라볼 때는 교수로서보다는 선배로서, 그 시절 저도 똑같이 고민했던 것들을 얼른 해소하고,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며 가깝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부전공으로 영상학을 택하시고 영상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까지 취득하셨습니다. 노어노문학과 영상학이라는 이색적인 전공 조합이 인상적인데, 교수님의 전공 여정을 들려주세요. 엄밀히 말하면 저에 대해서 잘 몰랐던 거죠. 사실 고등학생 때 만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때는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이런 것들이 공부에 방해가 되는 사회악처럼 그려졌고, 부모님께서도 달가워하지 않으셨어요. 그래도 저는 수능을 치른 뒤 진로 상담 자리에서 당시 한국 만화 정점에 계시던 허영만 선생님 문하생으로 들어가겠다고, 대학에 안 가겠다고 했다가 선생님께서 부모님을 불러오라고 하셔서 어머니가 실제로 오셨어요. 어머니와 선생님이 제가 대학을 갔으면 좋겠다고 설득하실 때 저는 이분들을 결코 말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을 갈 테니 대신 이후의 선택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당시 사촌 누나가 성균관대 공대를 다니고 있어서 제가 가본 유일한 대학이 성균관대였어요. 제 눈에는 성대가 제일 멋진 대학이었고 그만큼 좋아했죠. 어학에도 관심이 있었고, 마침 그때가 러시아 문학이 개방되던 시기라 노어노문학과로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니다 보니 공부가 어렵고 흥미가 잘 생기지 않더라고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까 제가 좋아했던 건 어학이 아니라 결국 그 언어를 통로로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게 되는 콘텐츠들이었던 것 같아요. 뒤늦게 제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깨닫고 복수전공을 선택하기 전까지 제 학점은 0.3이었어요. 3학기를 다녔는데 학사경고를 2번 받고 이수 학점이 12학점에 불과할 정도로 수업에 오지 않는 열등생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드라마틱하게도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는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집이 목동이었는데 그때는 1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그 통학 시간도 아까워서 학교 앞에서 자취하며 수선관 4층 작업실과 도서관을 오갈 정도로 학업에 몰두했습니다. 제가 지금도 학생들을 만날 때 꼭 얘기하는 게 스스로에 대해서 탐구하고 공부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거예요. 저도 잘 못했기 때문에 그 여정이 이렇게 길고 지난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그만큼 지금의 소중함을 알고 더 열중하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해요. | 2002년 학부 졸업 후 바로 애니메이션 제작의 길에 뛰어드셨습니다. 영상학 전공자가 선택할 수 있는 진로의 길목에서, ‘애니메이션’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애니메이션을 제일 좋아했어요. 10대, 20대 때 누구나 좋아하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들을 저도 많이 즐기다 보니까 급기야 ‘언젠가는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만든다면 이렇게 만들 텐데’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됐어요. 그런 방법들을 잘 몰랐을 때는 정말 막연했는데, 학교에서 관련된 공부를 하고 같은 길을 바라보는 친구들이랑 교류하면서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갈 수 있었습니다.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에서 시작했지만, 성대 영상학과에서 애니메이션을 직접 만들 수 있는 기술이나 기획을 배우고 나서부터는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더 재미있었고,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되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는데, 제가 당시 그것들을 보고 느꼈던 감정적 변화를 제가 직접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런 마음이 간절했던지 어느덧 20년 넘게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교수님께서 좋아하시는 애니메이션을 소개해 주세요. 제가 좋아했던 작품들은 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에요. 우선 제가 어렸을 때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워낙 센세이셔널했어요. 또 <H2>라는 청춘 학원물 작품도 좋아했습니다. 아직은 설익은 청춘의 남녀들이 풋풋한 사랑도 하고 열혈 스포츠를 펼치는 이야기입니다. 제게 ‘이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 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 작품 중에는 영화 <E.T.>도 있어요. 어렸을 때 처음으로 극장에서 봤던 영화였는데 정말 눈물을 펑펑 흘렸어요. 저는 대중적이고 여러 사람이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상업적인 작품을 좋아했고, 지금은 제가 그런 작품들에서 받은 즐거움이나 감동을 제가 만든 작품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 © khara, <H2>(1992) © Mitsuru Adachi / Shogakukan · TMS Entertainment, <E.T. the Extra-Terrestrial> (1982) © Universal City Studios LLC & Amblin Entertainment, Inc | 애니메이션 제작사 ‘아이코닉스’에서 <뽀롱뽀롱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플라워링 하트> 등 많은 작품을 제작하셨어요. 현재는 <똥깡아지 메주>라는 작품을 제작하고 계신데, ‘메주’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금 제가 어떤 작품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려면, 먼저 그사이에 일어난 환경의 변화를 이야기해야 해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을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굉장히 적었기 때문에 소수의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는 환경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누구나 만들어서 어디든 올릴 수 있는, 다양한 작은 취향들을 나누어서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되었기 때문에 예전과는 기획 자체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한 가지 목표를 두고 어떤 과녁을 맞추기 위한 기획이 아니라, 사람들이 ‘지금’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흐름을 발 빠르게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 <똥깡아지 메주>(2025), 공식 인스타그램: @mejoo_ddgg *<똥깡아지 메주>는 숭늉처럼 밍숭하게 생긴 얼굴과 두툼하고 복실한 주둥이를 가진, 오래 보아야 귀여운 아가 똥깡아지 메주를 중심으로 시골에서 일어나는 우엉리 깻잎마을 주민들의 일상을 그린 만화다. 그래서 <똥깡아지 메주>*는 예전의 작품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 ‘메주’는 소수의 사람이 되게 작게 기획해서, 점차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과정에 있는데요. 그래서 커다란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그때그때 보여주려고 해요. <꼬마버스 타요>나 <뽀롱뽀롱 뽀로로>는 크게 기획한 하나의 영역 안에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 <똥깡아지 메주>는 그런 영역 자체가 정해져 있지 않고요. 그냥 정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그때그때 사람들의 마음이 가는 곳을 찾아서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여주려고 해요. ▲ SNS에서 유행하는 밈을 소화하는 메주 ▲ 11월 9일까지 광장시장에서 열린 메주 팝업스토어 <메주네 집앞 농장> | 타 인터뷰에서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인 만큼 작품 내에서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장면을 내보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오랜 시간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오신 만큼, 이처럼 교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아동 애니메이션 제작 철학이 궁금합니다. <뽀롱뽀롱 뽀로로>라는 걸출한 작품이 회사에서 이제 막 성공했을 때, 곁에서 지켜보며 많이 배웠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은 아이들도 다 똑같다는 거예요. 어른들이 재미없으면, 아이들도 재미없습니다. 사람들이 종종 우습게 보고 착각을 해요. ‘애들 이 정도면 되지 않나? 이 정도면 애들 웃겠지’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이제 수업할 때 아동 타겟을 이해하는 세 가지 원칙을 얘기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느끼는 희로애락을 그들도 똑같이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훨씬 겸손한 자세로, 자신이 봤을 때도 재미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해요. 다음으로는 아이들이 우리보다는 아직은 매사에 좀 서툴러요. 그래서 우리는 친절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회상 장면이면, 뭉게뭉게 구름 같은 회상 효과를 정확하게 표시해 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시간 순서로 흘러가는 것들에 대해 굉장히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 장면이 현실인지, 상상인지, 과거인지, 미래인지 이해를 잘 못해요. 그래서 플롯을 너무 복잡하게 하면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는 보고 나면 뭔가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것은 절대 재미보다 앞서지는 않아요. 대단하게 근의 공식이나 철학을 배우는 게 아니고 ‘친구와 싸웠을 때는 이렇게 화해하면 되겠구나’처럼 작은 삶의 지혜를 배우는 정도입니다. 이 세 가지 정도만 지켜진다고 하면, 제가 만든 작품들보다 앞으로 훨씬 더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 겸임교수로서 수업 설계에서 현업성을 어떻게 확보하시나요? 저는 다른 교수님들처럼 애니메이션을 학문으로써 연구해 온 사람은 아니기에, 어쭙잖게 제가 학생들한테 학술적 영역으로 접근해서 이야기하게 된다면 그것은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는 분명히 아닙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좀 실효성이 있는 수업이 되도록 제가 잘할 수 있는 나만의 차별화 포인트가 무엇일지 열심히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실제로 진행하고 있는 ‘캐릭터애니메이션’ 수업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실제 신입 PD로 뽑혔을 때 처음 맡게 되는 일과 만약 그 일을 잘했을 때 기회를 얻어 맡게 되는 일, 이렇게 단계별로 구성해요. 수업 초반에는 ‘타요’라는 프로젝트의 스토리텔링을 이해하고, 이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이 되는지를 배웁니다. 실제로 20페이지 분량의 시나리오를 작성해 보는 경험을 중간 과제로 진행하기도 하고요. 기말 과제로는 신입 PD가 기본 업무를 잘 수행했을 때, 정말 희소하게 주어지는 기회가 있어요. 한번 본인이 만들어보고 싶었던 대중적인 작품을 한번 기획해 보는 거예요. 기획서를 쓰고 발표까지 해보는 과정을 기말 과제로 제시하는데, 모든 과정에서 학생들의 과제물들에 대해 현업 PD들에게 하듯 제가 전부 리뷰를 합니다. 이 과정이 다 실제 현업에서 PD들이 겪게 되는 일인데요. 그래서 현장과 가장 가까운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수업이라고 생각해요. | 애니메이션 제작자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2002년에 학교를 졸업한 후 쭉 같은 일을 해 왔으니, 올해로 제가 애니메이션 기획을 한 지 어느덧 23년이 되었더라고요. 앞서 일하신 선배님들이 보시기에는 짧은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저의 인생만 놓고 본다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한 가지 일에 쏟아 온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감사하게도 귀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래도 제가 만든 작품으로 큰 사랑도 받아보고, 그렇게 배운 것들을 후배들에게 전할 기회도 누렸으니까요. 제가 지금 ‘비욘드에이’를 설립한 지 5년 정도 되었습니다. 현재 회사에서 준비하고 있는 작품들이 내년, 내후년 속속 나오기 시작할 건데, 이 작업들은 제가 예전처럼 혼자 기획하고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 심지어는 한때 제자였지만 지금은 동료인 이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남은 기간 제 목표라고 한다면, 제가 만들고 싶은 작품보다는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만들고 있는 작품들이 꼭 바람대로 성공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당연히 회사도 좋은 성과를 얻게 되어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더 좋은 친구들이 많이 합류해 함께 일할 수 있겠죠. 그렇게 성공한 친구들은 또 새로운 후배들에게 저보다 더 큰 베풂이나 긍정적인 영향력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제 꿈은 ‘비욘드에이’가 뛰어난 기획자들이 각자 만들고자 하는 작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회사가 되는 거예요.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영상학도들에게 응원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학생 시절부터 교수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 지금까지도 학교에 늘 빚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빚을 꼭 갚고 싶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겸임교수로서 사실 회사 일만 해도 벅차지만, 그래도 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만나서 하나라도 좀 도움이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살고 있는데요. 작지만 제게는 그 빚을 갚는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해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요즘은 오히려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교수인 제가 학생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가면 지금 시대의 학생들이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고 느낄 수 있거든요. 그렇게 배운 것들은 <똥깡아지 메주> 같은 20대를 대상으로 한 작품 제작에 모티브가 되기도 하고요. 이렇게 또 빚을 지고 있네요. 그래서인지 우리 학생들이 더 좋은 기회를 더 많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데요. 아직은 작은 회사이지만 저도 회사를 열심히 성장시켜, 앞으로는 학생들과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필드에서도 함께 일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더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끝으로, 지금 여러분들이 영상학과에서 배우고 있는 것들은 사회에 나가서 한 가지도 버릴 게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것들이에요. 그리고 지금 만난 친구들, 옆자리에 앉아 있는 동료들도 지금은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들 각기 다른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가 되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로 성장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고, 지금 옆에 있는 친구에게 항상 다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수님들의 말씀이나 주시는 배움의 기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알차게 쓰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곳에 있더라도 분명히 자기만의 색을 갖고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가 될 거예요. 항상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No. 91
- 2025-11-26
- 6586



